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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Jul 18. 2023

완벽함에 대한 추구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있는 병원은 꽤나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대학교 인근에 있다. 푸릇푸릇 싱그러운 대학생들이 와서 털어놓는 이야기 중 상당수는 조금 더 잘하고 싶은 열망과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1-2등을 해오던 친구들이 모여 있는 대학교에서 생전 처음 받아보지 못한 등수를 보고 나면 다들 큰 충격에 휩싸이곤 한다. 다들 비슷한 공부머리에, 공부에 대한 집념을 갖고 있는 그룹에서 1-2등을 하기란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일이다.


완벽함에 대한 욕구는 그간 제법 성과를 내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내 노력에 대한 성과가 어느 정도 착착 나올 때는 그래도 그 완벽주의가 조절이 될 수 있으나,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때는 발목을 잡아버린다.

며칠 전에도 퀭한 눈으로 와서 쉼 없이 공모전을 찾아보고 스펙을 쌓을게 없나 고민을 한다는 학생이 있었다. 어느 정도 적정선이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주변의 다른 친구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성과를 이루어도 다른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니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도 완벽주의는 발목을 잡는다. 아주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끙끙대고, 기한 내에 완성을 하지 못한다.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성과는 없는 안타까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원하는건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적당한 퀄리티를 가진 결과물인데 말이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도 요새 완벽주의에 빠져있다. "적당히 하는 것도 필요해" "주어진 시간 내에 적절히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라고 말해주지만, 돌아오는 답은 "지금 나한테 대충 하라는 말이야?" "나는 완벽하게 내가 생각한데로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돼!" 이다.

진료를 보면서도,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어렵다. 대충대충 하는 것과 완벽하게 하는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 적당히 잘하는 것이란 대체 얼마큼 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 적당히는 누가 정해주는거고 얼마큼 하면 만족할만한 결과물인가.

내가 정해놓은 완벽함을 추구하려고 하다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삶" "완벽한 효율성"은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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