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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Oct 25. 2024

아이의 보물 일기장

그리고 나의 선생님

아이는 작년에 썼던 그림일기장들을 소중하게 모아놓고 가끔씩 꺼내서 들여다보곤 한다. 자신이 쓴 일기 내용 보다는 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글들을 다시 살펴보며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한다. 1학년때 아이 반에서는 일주일에 한편 이상 일기쓰기 숙제가 있었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짧게 여러편을 쓰는 아이도 있고, 길게 한두편 쓰는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는 후자였다. 선생님의 말을 금쪽같이 생각하는 아이는 사실의 나열보다 감정표현을 많이 하고, 대충 쓴 여러편보다 성의있게 쓴 일기가 더 좋은 일기라는 지침에 충실했다. 스스로는 비유를 한지 모르겠지만 비유법을 사용한 표현을 하고, 감정을 시적으로 풀어내려 해보고, 하루치의 일기를 무려 5-6장에 걸쳐 써가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는 담임선생님의 열렬한 지원이 있었다. 아이가 첫 일기를 정성들여 써서 갔을때 잘쓴 일기로 뽑아 공개하기도 하고, 조금씩 성장하는 글들이 보여지면 어김없이 긍정적 피드백이 이어졌다. 아직도 아이가 종종 보는 어떤날의 일기에는 '키야~ 장하다 OO!! My OO!! 너에게 사랑을 보낸다~ OO이 최고!!' 라는 극찬이 한페이지에 큼지막한 글씨로 쓰여있다. 보는 엄마도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이는 선생님의 격렬한 칭찬을 받으며 굉장한 자부심과 사랑을 느꼈을거 같다. 


어제 퇴근 후 집에 가니 식탁위에 아이의 일기장이 나와있었다. 일기장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요새도 가끔 지나는길에 반에 들러 인사를 하면 꼭 간식을 챙겨주신다며 즐거워했다. 엄마도 어릴때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 있어 엄마의 추억들을 꺼내본다. 저학년때 선생님들을 유독 좋아하고 따랐던 기억이 있다. 3학년 방학때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다가 집에 초대 받아 가기도 했다. 수줍음이 많았는데 어떻게 혼자 선생님댁에 갈 생각을 했나 모르겠다. 엄마가 정성스레 떠주신 니트 조끼를 들고 갔으니 겨울방학이었나 싶다. 반겨주시는 선생님의 얼굴, 넓고 깨끗한 햇빛이 밝게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지금은 흐릿해진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기억이 가끔씩 떠오른다. 머리가 짧고 선이 굵은 꽤 무서운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왜인지 선생님이 참 좋았다. 방학때도 생각난다고 전화를 해볼 정도였으니 정말 좋았나보다. 요즘 학교 분위기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일이라 아이는 깜짝 놀라며 "선생님 집에 간다고?!!!" 라는 반응. 

2학년때 선생님과는 유독 추억이 많다. 학기초 어쩌다보니 선생님 신발을 나르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는 교실 바깥에 선생님 전용 신발장이 있어서 교탁앞에서 신발을 갈아신으시면 내가 휘리릭 가서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수업이 끝날때 다시 신발을 가져다드리는 일을 했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일년간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 선생님의 발냄새 나는 신발을 들고 왔다갔다 한다고?!!" 현재에 사는 아이는 이해할수 없는, 그때를 기억할때 떠오르는 따뜻한 가죽냄새가 있다. 꽤 연세가 있으셨던 파마머리 선생님이었는데, 어느날은 점심에 나온 콩밥의 콩을 보고 벌레가 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어리광을 부리자 무릎에 앉혀 밥을 먹여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진상 학생인데, 어찌 그런 사랑으로 받아주셨나 싶다. 


어린 시절 받은 나를 인정해준다는 느낌, 사랑으로 대해준다는 느낌은 이후 나의 생활 전반을 이끌어주는 감정이었던거 같다. 아이 역시 비슷한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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