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다섯번째 - 한영애, 코뿔소
라디오 생방 스튜디오에서 들으면 ‘클라스가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가수분들이 있다.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쩔 수 없이 귀기울이게 만드는 흡입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분들. 그런 음악을 한 곡 듣고 나면 마치 드라마를 하나 세게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조용필, 임재범, 윤도현, 한영애, 나훈아, 김현철 이런 분들이 그렇다. 이분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삶을 이야기하는 느낌이어서 숙연하게 경청하게 된달까. 사운드가 남다른 스튜디오에서는 더 그렇다.
어느 해인가. 저녁 8시 밤 프로를 할 때였다. 심란한 정치 사건이 발생한 날 진행자가 관련 엔딩멘트 후 당시 사수였던 70대 M사 출신 선배님께서 한영애의 '조율'을 선곡했다. 실제로 이곡은 2016년 12월 3일 박근혜 퇴진 국민 비상 행동 6차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한영애씨가 열창한 노래였다. 익히 들었던 노래였는데 사수 PD님의 뒤에 서서 함께 클로징을 하던 그 순간 은 머릿 속 한 장면으로 박제됐다. 시위 현장에서 한영애씨의 목소리로 그 곡을 들었다면 얼마나 전율이 느껴졌을까.
그런 한영애씨가 부른 이곡은 내가 좋아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이기도 하다.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여섯번째 곡은 '한영애의 코뿔소'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kxgOetOn4
이 험한 세상 오늘도
달려야 해 우리는 코뿔소
자신의 모든 문제 스스로
헤쳐서 밀고 가야 해
저 멀리 봐 저 멀리
끝까지 응 코뿔소
코뿔손 누울 수가 없어
한 번 누워버리면은
다신 일어설 수가 없어
최근 들어 이런 메시지가 참 공감이 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직면하는 것. 그렇게 자신만의 근육을 키워야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회사일도 그렇고 내 개인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깊은 여운을 남아 사진으로 찍어 둔 문장도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함께 남겨본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오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남강 이승훈(한국의 교육자·독립운동가. 오산학교를 세웠다.)
한영애씨에 대해서 더 상세히 알아보자면 그녀는 7080 세대를 대표하는 레전드, 한영애 씨는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유니크한 음색을 자랑했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누구든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데뷔 당시만 해도 여성 가수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윤시내 씨와 함께 새로운 여성 보컬 스타일을 제시하며 한국 가요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블루스 장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R&B, 포크록, 트로트,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탁월한 음악적 성과를 보여줬으며, 5집에서는 트립합을, 6집에서는 R&B와 레게를 시도하며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을 이어갔다.
한영애 씨의 목소리는 저음이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초고음까지도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넓은 음역대를 자랑했다. 이런 역량은 연극 배우로서 쌓은 탄탄한 발성과 목 관리 덕분에 가능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앨범에는 ‘누구 없소’, ‘바라본다’, ‘코뿔소’ 등 명곡이 대거 포함됐다. 특히 '바라본다'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코러스에 참여한 전설적인 곡이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7위에 선정된 그녀의 앨범은 그 음악성과 가치를 입증하며, 한영애 씨를 여전히 최고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의미있는 에피소드로는 가수 김현식과도 함께 공연을 여러번 가지는 등 절친한 사이였는데 말년에 김현식이 간경화를 앓을 때, 술에 취해 공연연습에 온 그에게 한영애씨가“오늘 공연 연습하는데 술 취해서 오면 어떡해!” 라며 화를 냈는데 김현식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마이크까지 몸이 가질 않아, 누나…” 라고 힘겹게 말했다고 한다. 두고두고 이 일을 후회하셨다고...(여기에 어떤 말을 이어야 할 지 모르겠다...ㅜ) 김현식씨의 노래도 곧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