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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고요'를 주는 작은 꽃 한 송이 - 제비꽃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3 - 조동진, 제비꽃

by 꼬르륵

마음에 '고요'를 주는 작은 꽃 한 송이 - 조동진 '제비꽃'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일기 #3 - 한국 포크음악의 거장이 남긴 평화, 조동진 '제비꽃'**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는 하루 세 번 버스가 왔다. 아침 7시 30분, 낮 1시 30분, 오후 5시 30분. 그래서 아침에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가 5~6km 거리를 친구들과 걸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주변에 하다 보니 회사의 한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너 어릴 때 산 타고 학교를 다녔나며?" 그 말에 나는 산삼도 캐 먹었다고 했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랑 동갑인 친구들은 그 시골길에서 "올챙이가 먼저냐 개구리가 먼저냐" 같은 철학적(?)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길 너머 어디쯤에 "저 뒤에 진짜 나무가 있는 게 맞네, 아니네" 하며 내기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자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던 꽃이 있었는데 그게 제비꽃이었다. 작고, 수줍고, 예쁘고. 마치 숨바꼭질하는 아이처럼 풀숲 사이에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던 그 꽃들.


시골길에서 만난 제비꽃의 기억

그런 모습을 어쩜 이렇게 운율로 잘 옮겨놓을 수 있을까 싶은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천피디의 이븐한 음악 일기 세 번째 곡, 조동진의 '제비꽃'이다.


[조동진 - 제비꽃]

https://www.youtube.com/watch?v=SAK_LuLpf8s


한국 포크음악의 거장, 조동진

조동진은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1970년대에는 김세환, 양희은, 송창식 등 당대 최고의 포크록 가수들의 세션을 담당하며 한한국 포크음악의 기틀을 다졌고, 19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다.

1979년 첫 앨범 '행복한 사람'을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데뷔한 그의 1집 앨범은 경향신문이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포함되며 한국 음악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동준, 이병우, 장필순, 김광석, 고찬용, 조규찬, 유희열, 이규호 등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조동진 사단'의 중심인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소녀와 제비꽃의 시

3분짜리 노래에 이렇게 영화같이 시간을 담아낼 수 있다니. 조동진의 '제비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세 번의 만남으로 압축해서 들려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을 꽂고 있었다. "아주 멀리 새처럼 날고 싶어"라고 말하는 그 소녀에게서 우리는 순수한 꿈과 희망을 본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처음 만났을 때 제비꽃을 꽂고 수줍게 웃던 소녀가 무슨 일인지 야윈 얼굴로 눈물을 흘린다면 아마도 걱정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 눈길"을 바라보며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랬던 소녀가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해진 모습. 꿈을 품었던 소녀가 상처를 겪고 나서 결국 찾은 것은 평화였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모두가 찾아 헤매는 진짜 자유가 아닐까. 새처럼 멀리 날고 싶었던 꿈이 결국은 고요한 평화로 익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낸 노래가 또 있을까.


장필순이 말하는 인생 노래

특히 가수 장필순이 힘든 시절 자신을 버티게 해준 노래로 항상 꼽는다는 조동진의 '제비꽃'. 그녀는 평소 故 조동진을 음악적 스승으로 여기며 믿고 따랐으며 "음악 속에 담아야 하는 모습, 자세를 많이 배웠다"라고 밝혔다.

장필순은 '제비꽃'을 인생 노래로 꼽으면서 "내 세대는 노래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응원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아버님이 많이 반대하셨다. 그럴 때 가장 힘이 되어준 노래가 제비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넌 아주 평화로웠다'라는 가사가 편안한 눈물을 많이 만들어줬다"며 "그 노래를 밤새 듣고 들었던 기억 때문에 그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요가 주는 치유의 힘

나 역시 그녀처럼 그의 노래로 고요를 선물받고 있다. 시끄러운 도시의 일상 속에서 조동진의 '제비꽃'은 마음에 잔잔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어릴 적 시골길에서 만났던 제비꽃처럼, 이 노래는 작고 수줍지만 강한 위로를 건넨다.

제비꽃의 꽃말은 '겸손'과 '성실'이라고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조동진의 음악도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3분 남짓한 곡이지만 마치 오래전 그 시골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1부의 주제인 '시간의 감각'이 아닐까. 기다림도, 그리움도, 평화도 모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익어가는 것들이니까.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고요함을 찾고 싶을 때, 이 노래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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