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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문어 Jul 03. 2023

"애가 이상해졌어"

엄마, 나는 쓸데없는 기억력이 좋아

    결국 식후 낮잠을 못 이기고 밤 11시까지 자버렸던 며칠 전, 기숙사를 벗어나 설계실로 다시 가기 위해 샤워를 했다. 텅 빈 샤워실에서 혼자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그냥, 정말 갑자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엄마와 오빠가 내게 했던 말이 툭 하고 생각이 났다. 샤워를 하면서 우는 것은 꽤나 효율적이다. 그야 눈물도 콧물도 바로 다 씻어내면 되니까.


    우리 삼 남매를 제외한 전교생이 담배와 술을 하던, 전 학년 합쳐서 총 30명이 안 되던 촌동네의 작은 중학교에서 나는 지옥 같은 시절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회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꽤나 상극의 성격을 가진 동성동급생을 만난 탓이 문제의 발단이었겠거니 하지만, 당시 정말 아무것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나보다 더 영악한 친구들을 만난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내 자아를 버려가며 어떻게든 교우관계를 유지하려고, 오빠에게, 동생에게, 엄마 아빠에게 근심을 주지 않으려 혼자 열심이었다. 딱 3년만 버티면 되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이런 열심을 발견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지옥 같던 중학교를 벗어나 시내의 자칭 혹은 타칭 "명문" 여고를 들어갔고, 나는 드디어 그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기다 기숙형 고등학교였으니, 집구석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굉장한 기회였다. 정말이지, 사방에 정상적인 친구들밖에 없었다. 공부도 열심히, 학원도 열심히 하는 정상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드디어 내 자아를 찾아가 시작했다.


    그날도 주중엔 학교생활 열심히 하다 주말이 되어 집으로 내려왔을 그때였을 거다. 나의 말대꾸 한 번에, 엄마와 오빠는 둘이서 이구동성으로, 애가 기숙사를 들어가더니 이상해진 거 같다, 이상한 친구를 만난 것 아니냐며 나를 쪼아댔다.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나는 이제야 나를 찾은 것 같은데, 진짜 이상한 친구들은, 나를 괴롭게 만든 건 전부 중학교 애들이었는데 그때는 하나도 몰라주더니, 멀쩡한 내 친구들을 이상한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엄마와 오빠에게, 어느 날은 참지 못하고 중학교 시절의 서러움을 다 토해냈다. 이상한 애들은 걔네였는데, 내가 걔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걔네가 나한테 장난쳤을 때도 오빠는 내 말은 하나도 안 믿고 걔네말만 믿고 나를 욕했다. 왜 이제 와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냐, 정말 사정없이 토해내고 돌아왔던 엄마의 한마디.


"내가 걔네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 가만히 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엄마를 향한 나의 모든 신뢰가 무너졌던 순간이었다.




 


   대학을 와서도 그놈의 "애가 이상해졌다"는 계속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더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자라나는 중이었지만, 엄마도, 입이 험한 목사 아빠도, 허구한 날 나를 쪼아대는 오빠도, 그 누구도 나를 제대로 봐주지 못했다. 오히려 5년 만에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만난 외삼촌들이 그때와 달리 밝아진 내 모습을 제대로 봐주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여전히 엄마와 아빠, 오빠는 내 우울증의 가장 끈질긴 근원이 당신들이라고는 생각 안 하시고, 사과도 한 번 해준 적 없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가 미숙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라며, 나도 어렸고, 엄마도, 아빠도 계속해서 자라나는 중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지금은 예전보다는 더 괜찮은 마음으로 두 분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도 정말 많은 것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이렇게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을 마주하면 여전히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펑펑 울며 샤워를 하긴 하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결핍과 사건 사고들로 인해, 계속되던 자살사고와 우울증을 안고 여기까지 살아온 나는 어찌 보면 참 대단한 것 같기도~ 라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하고, 몇 년간 혼자 씨름해 보니 나는 타고난 기질도, 성격도, 우울증을 내다 버릴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아 그냥 우울증을 친구처럼 생각하는 중이다. 이 정도면 꽤나 행복하지 나?라고 생각했던 시점에도 우울검사지는 정신과 상담을 꼭 받아보라고 얘기를 하니말이다.


    예전엔 이런 생각이 들어도 글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글로 정리할 수 있는 상태까지 온 것이 참 감사하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 안의 것들을 풀어나가면 샤워하다 갑자기 우는 일은 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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