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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문어 Dec 03. 2023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건
F들의 마음

저는 T입니다.

11월 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귀신같이 12월이 찾아왔다. 연말이 되었으니, 올 한 해를 다시 복기해 볼 시간이 되었다. 어디 보자... 올해의 키워드는... 모르겠다. 개고생?이라고 하면 진짜 고생한 것 밖에 남지 않을 것 같다. 작년엔 뭐였더라, 아. 작년엔 유독 "다정함"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은, 다정함을 먹고산다. 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썩어문들어져 갈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다정함을 주고받고, 그 힘으로 하루하루를, 일 년을, 길게는 10년을 살아간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나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다정함을 건네주던 건 대부분이 F인 친구들이었다.


유치하게 또 mbti 얘기를 하나.. 싶으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긴 했지만, mbti얘기로 싸우자는 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다정함"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이 새벽에 작업하다 말고 또 브런치를 켰다.



작년 이태원참사가 있었을 때 나는 논현에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는 또 내 또래의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참사가 있었던 다음날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오전근무가 끝나고 혼자 국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국밥을 먹다 갑자기 너무 서러워졌다. 세월호 때도, 이번에도, 다 내 또래들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을 인생, 살면서 그 사람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마음 아프게 다 떠나보내야 하나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우는 모습을 따로 왔던 동료 직원친구에게 들켜버렸다. 그렇게 둘이서 착잡한 마음으로 국밥을 먹었더랬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퇴근하고 강남에 있는 헬스장에서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지하철 역 입구 앞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 닭꼬치를 먹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인아저씨와 나 혼자 뿐이었던 포장마차에 하나 둘, 청년들이 와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순대를 하나씩 입에 넣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저 사람은 공부하다가 집에 가는 거 같고, 저 사람은 놀러 나온 것 같고, 저 사람은 회사에 있다가 잠깐 나왔나 몸이 가볍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포장마차를 지나쳤던 회사원 한 분이 다시 돌아와 어묵꼬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야무지게 드시고는 계산을 하시면서,


"5만 원 입금드렸는데, 여기 있는 이 청년들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시는 말이,


"요즘 청년들 힘든데, 힘내라고~"

하고는 쿨하게 퇴장하셨다.


그 회사원 아저씨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용기 내어 마음 써준 다정함이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차갑고 서로를 향해 날 선 말들이 가득할 시기에 꽃 한 송이 하나가 딱 던져진 기분. 그때 알았다. 아 사람은 다정함을 먹고사는구나. 사랑을 먹고사는구나.



T성향이 짙은 사람의 얼굴을 한 로봇 같은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F들이 늘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을 잘하고 사랑이 넘칠까, 물론 부모님의 영향도 있겠지만, 타고나는 부분도 참 큰 것 같았다. 그래서 관찰했다. 익숙하진 않지만, 그 친구들처럼 나도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이 부분이 굉장히 로봇 같고 웃기지만 이렇게 사회화가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주변엔 T보다 F인 친구들이 많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F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아닌가 했는데, 돌아보면 내가 F에게 늘 자석처럼 끌려갔기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나는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다.


아, 글을 쓰다 보니 보인다. 올해도 나는 참 이곳저곳에서 다정함을 건네받았다.

방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못할 때, 나를 찾아주던 친구들의 목소리, 날 선 말들에 마음이 무너져서 전시를 포기하려 했던 나를 세워준 친구의 말, 굳이 굳이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고마운 사람들, 어떤 모습이어도 나를 믿고 응원해 주던 사람들,


어떻게 보면 정말 굳이 굳이인 말들이었을 텐데, 그래도 굳이, 마음 써서 건네준 말들이 올 한 해를 살아가게 만들었다.


2023년, 이번 해의 키워드는 '말'이 될 것 같다.

정말 많은 모양의 말들을 경험했다. 어떤 말은 내 맘에 꼭 들어맞기도 했고, 어떤 말은 의도는 읽히지만 도무지 맞지가 않아서 버리기도 했고, 어떤 말들은 마음을 그렇게도 쑤셔댔다.


한 철학과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셨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나의 언어와 상대방의 언어를 알아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F들이라고 다 2개 국어에 능한 사람만 있진 않다. 그리고 T지만 2개 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 쓰고, 다정함을 건넬 줄 아는 여유가 있는지에 달린 듯하다.


12월은 오갔던 다정한 말들을 다시 되새기고,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굳이 굳이 마음을 써서 다정한 말들을 건네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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