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가 되어줄 수 있냐,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내가 진행하는 일에 대한 짧은 소개를 zoom으로 하면 되는 것이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강의' 나 '강사'의 단어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소개자' 정도의 단어가 그나마 마음 편한데 주관하는 분들의 통칭 용어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내 입으로 내뱉기가 부끄러워 직원들에게도 '강의는 아니고 강의 비스므리한 거 하고 올게'라고 얘기했더니 그 비스므리한건 도대체 뭐냐며 눈이 동그래졌었다.
기관 내 실습 오는 학생들 대상으로 짧게 소개 몇 번, 외부(?) 사람들에게 두어 번 소개해본 적이 있다. 그 외부 일정의 순서는, 제의를 받고, 이력서와 강의록을 보내고, 현장에서 한 시간 정도 소개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력서. 나만의 비공식 실습 기간 6년 후, 입사하면서 다짜고짜 맡겨진 일이라 관련 경력란에 딱히 채울 게 없어서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는데 옆 직원이 '내 이력은 비밀'이라고 적으란 말에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백을 채우기 위해 보는 분이 뜬금없다 하셨을, 관련 없는 '영어강사'로서의 이력을 살포시 끼워 넣었던 기억도 난다.
첫 소개 때, 진행 상황 얘기 끝에 이런 게 힘들고 저런 게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 앞에 서니 공감도 되고 그래서 신이 나서 그랬던 것 같고 그때 무척 속이 후련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소개에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소개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0분 정도. 한정된 시간이고, 마지막 순서라 다들 지쳐 계실 듯하여 최대한 핵심적인 것으로 채워야 했다. 두어 번의 연습 끝에 내 감정은 빼고, 정말 알려드리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아주 담백한 소개가 되었고 다시 떠올려봤을 때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다.
맡은 일로 약 3년을 보낸 지금, 한 줄 정도를 더 채울 자격증이 하나 겨우 생겼을 뿐이고, 아직도 경력란은 여백이 다하지만 이젠 그 여백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다음 주면 이제 가을 일정 시작이다. 늘 어려운 일정이지만 소개자로 서보며 다지게 된 마음의 힘을 믿고 잘 잘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리고 만 4년이 될 내년 즈음엔 내 일에 필요한 한 개를 더 채워보기로 한다. 경력란의 한 줄은 못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