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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Sep 17. 2024

수면의 질

며칠째 몸속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고 느껴 한의원을 찾게 되었다. 최근 이런저런 게 불편했다고 말씀드리던 중, "잠은 잘 주무세요?"라고 물으시는 의사 선생님께 자다 한두 번 깨긴 하지만 잘 자는 편이라고 말씀드리니, 자다 한두 번 깨는 거면 잘 자는 게 아니라고 하다. 다 큰(?) 성인이 자다 한두 번을 안 깨고 잘 수 있는지를 질문하니 웃으시며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게 컨디 난조의 원인 중 하나일 거라고 하셨고 침치료를 받고 나온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생각보다 한 호흡으로 쭉 잔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양질의 수면을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기도 고, 깨서 다시 잠들기 어려웠던 날의 피로에 더 민감해지기도 했다.


업무일정으로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출근을 해야 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고 눈이 떠진 시각은 새벽 두 시 삼십 분. 전날까지 는 한참 활동할 시간이었기에 시간이 갈수록 더 말똥 해졌고 타국에 혼자 남은 딸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그대로 기상을 했다.


출근 후 피로감은 있었지만 퇴근해서 뻗으면 되었고 어차피 이 상황이 계속되진 않을 거 생각을 고 그러다 보니 며칠을 그런 새벽을 보냈음에도  더 이상 '자야 한다'거나 '다시 잠들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놀랍게도 그것의 피로감에서 해방되었나쁜 수면의 질에 꽂혀 피곤하게 보낸 지난날들이 조금 허탈해졌다. 한 끗 차이. 생각의 한 끗을 바꾸기가 이렇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데 그걸 만들어주는 일상의 순간들이 참 고고 귀하다.


나는 여전히 자다가 새벽에 한두 번 깨고, 일부러 무음으로 설정하지 않아 근황을 전해오는 딸의 카톡에 바로 응답을 하고, 거기에 브런치를 슬쩍 기웃거리는 까지 더해졌지만, 그럭저럭 잘 자는 편인 사람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수면의 질이 다시 신경 쓰이게 되는 날까지는 그렇게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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