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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Oct 19. 2024

그 자리

주말, 어김없이 아차산에 오른다. 체감상 세상에서 가장 쉬운 산이 동네에 있음이, 그래서 주말마다 간편한 차림으로 산책하듯 나서서, 한 시간 정도의 걸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오른 정상엔 내 자리가 있다. 나만 아는 내 자리. 아무런 표식이 없으니 어느 날은 다른 누군가의 자리가 되고, 렇더라도 잠깐 기다리면 다시 나에게 허락되는 자리가 있다. 목에 두르고 간 수건을 바닥에 깔면 그대로 앉을 만한 자리가 되고, 그렇게 앉아 고개를 들면, 이만한 수고로 얻어지는 풍경이라기엔 고마운 뷰가 눈앞에 펼쳐진다.


1박 2일의 일정으로 조금 특별한 여행을 다녀왔다. 사별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 사별 후 많은 감정들과 삶의 무게를 지고 긴 터널을 지나시는 분들께 잠깐이라도 힐링을 드리고자 떠난 시간, 울고 웃으며 보낸 이틀, 그리고 돌아간 그분들의 일상.


사별가족들이 돌아간 자리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있다.  잠시 비워두었던 그분들의 공간을 채우고도 아직 비어있는 그 자리. 아무런 표식이 없지만 어느 날, 어느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자리이다.


사랑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다시 사랑했던 시간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고 평범했던 날들이었다. 굳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잊히기도 했고,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사랑인걸 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 범하게 냈던 시간들은 잘못인듯 남았고, 굳이 말로 다하지 않았던 시간들은 후회 남았다. 잔인하게도 그 미안함과 후회가 평범함이 되었고, 이젠 그 마음  말로 다하고 싶어다. 그괜찮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다.


여행 후 안부를 묻는 나의 문자에 한 분이 긴 답을 보내셨다.

'...

여행을 한다고 무엇이 그리 달라질까

그냥 프로그램 일정에 참여할 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고 의심하며 출발하였지요.

그러나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나도 모르게 마음 한켠이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렴풋이 보이는듯하기 때문입니다...'


잊으려고 회피하고 외면하며 살아냈을 시간, 마음으로 수백 번 다시 쓰고 고쳐 쓰며 버텨왔을 시간,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채워줄 수 없음에 수없이 넘어지고 무너졌을 시간들이 어느 날 문득 미가 되어 돌아오길 소망한다. 지난 1박 2일의 여정처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미소한 울림이 위로가 되어 돌아와, 마음을 묶고 있던 손수건 한 장을 펼쳐 놓고 유가족들이 편안하게  쉬고 쉬어 자리가 되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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