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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터릴리 Mar 24. 2024

올해 교과 전담이 되었습니다

초등 교과 전담 교사로 살아남기

  나는 올해 6학년 음악, 영어와 3학년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초등에서 대부분 교사는 담임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과 전담은 '소수자' 다. 학교별로 전담을 선호하기도, 선호하지 않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학급 경영의 부담이 한껏 커져 전담에 대한 선호도가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하지만 시간 선택제아 휴직 예정자가 일정 인원 이상 있을 경우 보통 교과전담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휴직이 자유롭게 사용되는 요즘 전담 자리는 귀하기도 하다. 내가 이번에 교과전담을 맡게 된 이유는 학교에서 특수부장 업무를 맡으며 전담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장업무순환제에 의해 내가 자연스럽게 특수부장 업무를 맡게 되었고, 영어를 가르칠 만해서 제안하신 것 같다. 여하튼 그래서 올해 교과전담교사가 되었다. 

 

  새삼스러운 듯 말했지만 올해 인생 처음으로 교과전담교사가 된 것은 아니다. 나는 근무 지역을 한 번 옮긴 케이스인데, 울산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다시 임용을 본 경우다. 울산에서 1년 차 근무가 끝날 즈음 서울 임용이 결정되어 2년 차 때에는 반년 정도만 근무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잠깐 3, 5학년 음악 교과를 맡았더랬다. 그때는 엄청 베테랑 음악 전담 선생님이 같이 근무 중이라 옆에서 보고 많이 따라 하며 어렵지 않게 반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엿 10년 전 이야기. 지금은 환경도, 학년도, 교과도 많이 다르니 예전 경험을 굳이 많이 떠올려서 비교하지는 않으려 한다. 


  10년 전 잠깐 전담을 한 경험을 제외하고는 9년 가까이 담임으로 생활해 왔다. 매년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느끼는 순간들이었고 매일 학급 운영과 6차시 가까운 다음날 수업들을 준비하는 일상이 쌓여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곤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수업보다도 학급 운영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수업하는 교사로서의 자부심은 많이 닳고 닳은 상태였다. 학급 운영이라고 거창하게 수식하지만 실상은 아이들 사이의 작은 갈등과 문제상황을 들어주고 나름 해결책을 도출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점심시간에 교직원 석에 앉아 고요히 점심을 먹는 교과전담 선생님을 보면서 "아, 편하게 점심 먹어서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시작으로, 하나의 수업을 준비해서 여러 차례 쓸 수 있는 것도 부럽고, 학부모님과의 소통으로 힘들지 않을 교과전담 자리가 속된 말로 편해 보였다. 그렇지만 지원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기에 강 건너보듯 보았을 뿐. 


  올해 전담을 맡아보니, 나의 예상과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먼저, 비교적 수업 한 차시를 준비하고 여러 차례 (우리 학교는 규모가 작아 3회 쓸 수 있다) 활용하며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어 수업에 있어서 효능감이 커지는 건 정말 맞았다. 수업 준비가 정말 재밌고, 수업을 첫 반에서 해보고 부족했던 점을 개선하며 더 나은 수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쾌감이 있어서 나 '교사가 적성이었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둘째, 학부모 민원에 끙끙 머리 싸매고 학교 가기가 두려운 일은 없었고, 점심시간도 편하게 밥 먹을 수 있어서 점심시간이 정말 기다려진다.


  하지만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 한 가지는 아이들이 담임교사를 대할 때와 교과전담교사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거였다. 살짝살짝 전해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다를지는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내 일이 아니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담임 선생님의 삼엄한 감독 아래에 억눌렀던 자유로운 본능이 교과 시간에는 스멀스멀 퍼져 나오고, 폭발하기도 한다. 교과 전담에게는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라는 생각에 첫 주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없었다. 남겨서 이야기할 시간도, 수업시간도 다른 반과의 진도가 있으니 수업 시간 안에 문제 행동에 대해 다룰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첫 주에는 이름도 못 외운 상태에서, 6번의 새로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하다 보니 담임과는 다른 스트레스와 긴장도로 그 주 주말에는 넉다운되었다. 앞으로 이 아이들과 일 년을 어떻게 보낼까, 수업하기가 너무 두렵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전담 첫 주 주말까지의 소회다. 지금은 약 3주 차를 지나고 있는데, 1년간 나의 생각과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갈까? 나도 궁금하다. 요즘 읽고 있는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에서 이런 다산 선생의 말이 나온다. 


닭을 쳐서 달걀을 얻고 병아리를 기르는 것은 속된 일이지만, 
이 속된 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아하고 맑은 일이 될 수 있다. 



  교과 전담 교사로 살아남는 과정이 속된 일이라는 건 아니고, 순탄치 않더라도 그 과정을 즐겨보기로 했다. 자주 맡을 수 있는 직무도 아니고. 어느 순간 내 쪼대로 수업하고 학급 운영하는 구태의연한 교사가 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실망한 시점에 교과전담이라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건 의미심장하다. 고군분투해 나가는 과정을 브런치에 연재해 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좀 더 우아하고 맑은 일이 되지 않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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