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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13. 2023

언제까지나 젊을 순 없지

옷을 좋아했던 둘은 시간만 나면 쇼핑몰을 찾아다녔다. Paul 제공

"순대국 특으로 먹자"


해외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가 두달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한 말이었다. 짧은 일정 탓에 만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출국하는 날 오전에 급하게 만나 이같이 밥을 먹게 된 것이었다. 직장인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시간이어서 간신히 빈 자리를 찾아 식당에 앉을 수 있었다. 앉자마자 별다른 말 없이 물을 따르고 반찬을 담고 수저를 테이블에 올렸다. 오랜기간 이어져온 우리의 루틴 같은 것이었다.


이내 나온 순대국을 우리 옆자리에 앉았던 직장인들처럼 전투적으로 먹었다. 깍두기가 없어지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채웠다. 그렇게 어느정도 허기를 달랠 즈음 두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라 쉴새 없이 톡방이 울릴거라 생각하겠으나 그렇지 않다. 물론 실없는 이야기는 계속 던지지만 상대가 바쁘지 않아져 답장을 해야 톡이 이어지기에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진 못한다.


이날의 주제는 향후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거창해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주제였다. 어쨌든 각자 원하고 평생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아가는 중인데 그 속에서 어떤 변모를 거쳐 궁극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 꾸준히 나눠왔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항상 언급하는 게 있다. 고등학교 때 신나게 놀았던 거에 비해 무척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마냥 학업에 소홀하진 않았지만 구체적인 대책 없이 살았으니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개천에서 용난 게 분명했다.


대충 식사를 마무리한 뒤 카페로 가다가 사진스튜디오를 발견했고 곧바로 들어가 촬영을 했다. 남정네 둘이서 어떤 포즈를 취할 수 있겠는가. 총 10번을 찍었는데 모두 다 같은 구도에 똑같은 표정이었다. 놀랍게도 이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4장의 사진이 있었고 인쇄를 해 하나씩 나눴다. 우리 모습을 본 친구는 "늙었다"며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 보니 꽤나 강해진 인상들이었다. 좋게 말하면 어른스러워졌고 다른 말로는 젊음이 사라져간다 정도.


문득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싶어 들춰봤다. 그랬더니 정말 지금과 사뭇 다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땐 사진 찍을 당시가 제일 못났다 생각했는데 지금보다 더 싱그러운 모습이 담겼었다.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보니 시간이 참 빠르다 싶었고 돌아갈 수 없는 20대의 나날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때 좀 더 고민하고 애쓰고 즐겼으면 어땠을까하는 마음과 함께.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에 있는 내내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순간까지 톡을 주고받을 때 칼답으로 응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들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까 생각해 본다. 학부시절 막연하게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모든 것 제쳐두고 그저 평범하게 오늘을 보냈다는 점과 지나온 과거를 아련하게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 꽤 괜찮은 어른이를 살고 있다 토닥여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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