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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29. 2023

일상을 갑자기 벗어나 보면

울렁이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게 좋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 중이다. Paul 제공

얼마 전 금요일도 아닌 주말도 아닌 평일에 제주도로 향한 바 있다. 숙박을 하는 것도 아닌 당일치기로 말이다. 별도로 계획했던 여행은 아니었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 급하게 결정했던 일탈 정도에 해당했다. 그래도 익숙한 곳을 잠시 떠난다는 기대는 여행 당일이 다가오기까지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집을 나선 건 새벽 4시 30분쯤이었다. 비행기가 6시 50분쯤이었기에 차를 회사에 버려두고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실 이날 새벽 3시쯤부터 눈이 떠져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눈을 감아봤지만 그럴수록 정신이 멀쩡해졌다. 하는 수 없이 설정했던 알람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었는데 다행히 피곤함은 없었다. 떠난다는 즐거움이 피곤함을 지배한 것이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워두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새벽 6시가 되기 전임에도 많은 사람이 역 안에 있었다. 보통 이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있기 마련인데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새삼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지만 게으르게 안주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돌아보기도 했다.


이후 짝궁과 공항에서 만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제주는 매우 화창한 봄 날씨를 선사해줬다. 무려 18도에 이르는 기온을 나타낸 덕분이었다. 곧장 보말죽을 먹으러 간 우리는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동쪽 투어를 시작했다. 사실 거창하게 투어라고 할 건 없지만 시간상 한 지역만 돌아야 했고 관광객이 없을 것 같은 이 지역을 선택했다.


여유로웠던 일정 가운데 기억에 남는 건 다랑쉬오름을 올랐던 거다. 오름이라고 해 그냥 언덕이나 동산쯤 생각했는데 입구 앞에 서니 등산과 다름 없는 오름세를 보유하고 있었다. 포기할까 싶었지만 이왕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에 아까웠다. 그래서 짝궁과 나란히 올랐는데 점점 더 가파른 길이 나와 몇번을 그냥 내려가자 말을 나누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도 짝궁도 좀처럼 포기를 모르는 성격에 '끝을 보자'고 합의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정상에 위치한 큰 돌에 앉아 오르길 잘했다는 말을 내뱉었다. 밑에선 느낄 수 없었던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때려줬고 그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고요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 무얼 얻으려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나 한탄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삶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이같은 시간을 통해 짧은 고찰을 할 수 있어 좋았단 뜻이다.


돌아갈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짝궁과 나는 거하게 회를 해치운 다음 공항으로 향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공항에 붐비는 인파를 보며 이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시간을 보냈든 여행의 마지막 발걸음은 이유를 막론하고 아쉬우니까. 그럼에도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기에 여행으로 얻었던 힘을 잘 관리하자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짬이 나면 다시 와야지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날 사진을 많이 찍어둔 탓에 일터로 복귀해서도 지나간 시간들을 복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이랬었지' 추억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오늘을 살아가게 해 준 여러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종 느끼지만 삶이란 별다를 게 없다는 걸 이번에도 자각했다. 애를 써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분명한 목적이 없다면 지나치는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훌쩍 떠날 수 있음에, 매일 욕해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좀 더 감사해야 겠다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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