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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13. 2024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차에 있던 물로 창문을 씻어내린 뒤 모습. Paul 제공

오늘 있었던 일이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오토바이가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속도를 내며 앞차를 따라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너그럽게 끼워줄 여력은 없었다. 그러자 내 차량 뒤로 끼어든 오토바이 운전자는 옆으로 빠르게 앞지르며 창문에 침을 뱉었다. 고속도로로 막 진입할 무렵 벌어졌던 상황이라 오토바이를 곧바로 쫓을 수 없었다.


이후 목적지에 정차해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다리 밑을 지나던 찰나였어서 오토바이 번호판 식별이 불가능했다. 블랙박스 SD카드를 노트북으로 옮겨 큰 화면으로 다시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관할 경찰서 교통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문의했다. 경범죄 처벌은 가능한데 번호판이 식별돼야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 오토바이 번호판을 외우지 못한 나를 스스로 나무랐다. 그리고 혹시나 번호판이 보일까 싶어 블랙박스를 몇번이고 다시 돌려봤다. 동일한 결과가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무렵 블랙박스 내용 중 해당 오토바이가 한 건물에서 도로로 진입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 바로 앞에 여러 차가 주차돼 있었고 이 차주들에게 양해를 구하면 번호판을 선명하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있던 곳과 현장은 거리가 꽤나 가까웠다. 실제로 저 결론을 얻은 뒤 다시 가볼 작정으로 차 문을 열어 운전석에 앉기도 했다. 그런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봐주자하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지우고 싶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라냐고 물었더니 그 지인은 "창문에 직접 뱉는 건 못참지"라는 답변을 줬다. 어찌보면 내가 원하는 결말이었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서도 한참을 앉아 생각했다. 나는 왜 움직이지 못한 걸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고작 3만원 과태료를 기사에게 물리기 위해 노력을 쏟아야 하나 망설임이 커져갔기 때문이다. 내게 그랬다면 분명 이같은 행동이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봐주는 게 맞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괘씸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지만 큰 마음을 가져보자는 생각이 더 들어 결국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사람은 본인의 길을 가며 자신이 아주 멋지게 이겼다고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은 다채로운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걸 이렇게 또 배우는 하루다.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실천하게 해줘 덕분이라고 말해야 하나. 하루 빨리 잊어버릴 수 있게 다른 감사를 찾아 곱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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