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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08. 2024

투영으로 정해진 꿈이 아닌지

대치동 학원가 취재를 갔다가 바라봤던 모습. Paul 제공

2주 전 사촌누나가 아이들을 데리고 상경했다. 개학이 코앞에 다가오자 마지막으로 제대로 놀겠다는 심산으로 없는 시간을 쪼깬 것이다. 나와 어머니가 때마침 저녁 시간이 비어 집 근처 카페에서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날 이야기의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조카들의 진로 고민으로 채워졌다. 악기를 전공하는 조카가 이제 곧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서울로 보낼지 아니면 지방에서 계속 배울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카에게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자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렴 괜찮다는 답을 줬다. 이런 철없는 대답을 수습하는 건 사촌누나의 몫이었다. 레슨부터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와 취업까지 큰 그림을 늘어놓았던 사촌누나의 말을 듣자니 조카의 꿈이 엄마에 의해 결정된 건가 싶기도 했다. 줄곧 말을 이어가던 사촌누나는 "그래도 이모가 부럽다. 애들 다 잘 됐잖아"라며 적극성이 없는 자식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촌누나의 말을 듣고 중학생 시절을 떠올려봤다. 조카는 진작에 진로를 정해 나아가기라도 하고 있지 난 그러지 못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께서 정해주셨던 장래희망이 있었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공부를 해야 대학을 가니 딱 그만큼만 했고 무언가 원하는 목표를 세워 부단히 노력하진 못했다.


돌이켜보면 용기가 없었다. 문과로 가면 더 많은 흥미를 갖고 공부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부모님이 원했던 직업을 얻어야 하니 별 수 없이 이과에 남아야 했다. 그래도 수학은 좀 했었는데 문제는 과탐이었다. 단순암기력이 괜찮아 책을 통째로 외울 수 있었지만 과학에서 제일 중요한 심화 적용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매번 낮은 점수를 받았고 흥미도 없는 분야에 원동력은 제로(0)를 넘어 마이너스(-)였다.


얼렁뚱땅 대학생이 되긴 했지만 학과는 맞지 않는 옷 그 자체였다. 딱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오는 동기들과 달리 책을 아무리 들춰봐도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난 쿨하게 D+를 맞기도 했다. 매 강의가 너무 지쳤고 두려웠다.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이렇게 4년을 보낸 뒤 도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군복무 중 진로를 바꾸겠다고 선언했을 때, 어학연수 후 전과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여태껏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아들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닌 종종 우리 부모님을 고지식한 분들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분들이다 싶다. 본인들의 의지가 투영된 꿈을 계속 강요할 수 있는데 물러서고 이해하며 아들이 진짜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묵묵히 지지해줬으니까.


나아가고 싶은 바를 스스로 찾은 뒤 어떻게 됐냐면 그야말로 고속도로를 타게 됐다. 어떤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거나 부러워할 성취를 얻어냈다는 게 아니다. 대외활동과 인턴을 찾아다녔고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등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사부작거렸다. 마침내 직업을 갖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막힘없이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 앞서 언급했던 '스스로'였다.


당시 했던 생각을 이같이 정리하는 지금 다시 사촌누나를 만났을 때로 돌아가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조카에겐 "누군가 하라고 해서가 아닌 스스로 악기 연주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할 자신이 있는지"를, 사촌누나에겐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킨 것이 아닌지"를 말이다. 어느 궤도에 도달하기까지 어떻게 두려움과 걱정이 없겠나. 분명한 확신을 세우지 못한다면 이 감정들은 끊임없이 덤빌테고 아마도 완주하지 못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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