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1명이 있다. 무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동네 친구다.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우리는 고3때 제대로 놀면서 더 가까워졌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을 앞두고 무작정 놀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철없는 학생들이 무얼 알겠는가. 그냥 일단 오늘 재밌게 놀면 그걸로 만족하다 생각했었다.
웃기게도 우린 같은 대학을 갔다. 놀았던 거에 비하면 하늘이 도왔다 싶을 만큼 좋은 곳이었다. 남들은 대학생이 됐다고 놀때 우린 반대로 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고3때 다 놀아봤으니 신입생이라고 별 새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또 웃기게도 이 시간이 우리의 강점이 됐다. 다들 성적 맞춰서 대학에 오니 졸업하면 무얼할지 4학년이 되어서 고민하는데 우린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민했으니깐.
그렇게 10년 뒤 난 기자가, 친구는 승무원이 됐다. 나의 꿈을 둘째 치고 취업이 너무나도 어려운 요즘 세상에서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큰 감사 아닌가. 꾹 참고 다니면 연차가 쌓여 누릴 게 더 많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친구는 별안간 사표를 냈다. 도저히 원래 꿈인 조종사를 하지 않고는 아쉬울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후배들에게 원하는 꿈을 찾아 나아가라고 말하는 나지만 사실 친구의 이런 결정에 놀라긴 했다. 친구는 2개 외항사를 다녔는데 모두 유력 항공사였다. 조종사와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한 업계에 있으니 만족하며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다 아쉬웠다. 친구가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전을 해보지 않으면 후회로 남을 것 같단다.
그러고보니 친구는 코로나 시국으로 조종사학교가 문을 닫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바 있다. 그리고 수습을 마친 6개월 만에 사직을 했었다. 안전이 보장된 삶을 내던진 이유는 코로나도 끝났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결심에서였다. 이때 난 열렬히 응원해줬는데 최근 그가 사표를 쓸 땐 아쉬움을 말하다니 현실에 찌들었음을 자인하는 셈인가.
누구든 똑같은 상황이 되면 이해한다고 했던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평생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정말 그럴까하는 고민이 깊어졌었다. 그리고 최근 절정에 달하니 친구의 결정이 이해가기 시작하는 참이다. 이런 고민을 주변과 슬쩍 나누면 내가 친구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전해준다. 그 어려운 곳을 들어가 일을 하는데 아쉽지 않겠냐고 말이다.
일을 하면서 느낀다. 영향력이 중요한 이 업계에서 어떤 곳보다 최고 대우를 받으며 수월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능력있는 선후배들과 일원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현장에서 느껴질 때면 더 와닿는다. 이런 걸 생각하면 내가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솔직하게. 아이폰 미니를 멋지게 잘 쓸 수 있다고 다짐하고선 산지 1시간 만에 후회하는 유저의 마음이랄까. 굳이 비교하자면 아주 적절한 비유다.
일을 하면서 누가 마냥 즐겁기만 하겠는가 우린 어른인데. 다 참고 견디고 버티며 근속하고 가족을 부양하게 되고 그러면서 늙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니깐. 그런데 인생은 딱 한번만 주어지고 지금 행복하지 않은 그저 하루하루 버틴다는 힘듦이 이어지면 다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별일 없이 무탈하게 잘 해낸 척 하기가 참 벅차다. 멋지다고 해 불편한 옷을 입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면 그날 밤 집으로 복귀했을 때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하루와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