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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은시인 Aug 03. 2023

유담이에게 보내는 편지

만 33세, 나와 아내에게 유담이가 찾아왔다. 


아내는 초음파 사진과 짧은 편지를 함께 모아놓을 책을 보여주었다. 이런 것까지 제품으로 나오다니 세상이 좋아졌다. 유담이에게 보내는 내 메시지도 써달라고 했다. 사실 그 대화를 나눈지 벌써 여러날이 지났지만, 아직 내 글을 적지 못했다. 그 작은 칸에 내가 유담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압축해낼 자신이 없었다. 동시에 유담이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는 가득한데, 아빠의 편지는 몇 글자에 불과하다면 그 또한 아쉬웠다. 그래서, 나도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편지를 빼곡히 써보기로 했다. 유담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줄 선물로. 


유담이가 태어나기까지 앞으로 148일 남았다. '글'은 또는 '글쓰기'는 보통 음악이나 공연과 같은 순간의 미학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기를 비롯하여 시의성을 가지는 글은 결국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는 순간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150여일간,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내 마음의 형태를 포착하여 백지 위 활자로 조각해낼 예정이다. 내 글의 유려함이 챗GPT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빚어내는 시간의 소중함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을 거라 위안하며. 


유담이에게 보내는 편지는 유담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와 앞으로를 향한 격려도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33년의 경험은 80을 바라보는 현인의 눈에는 짧고 우스워 보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 자신도 내가 평균 이상의 지혜와 혜안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1인칭이다. 세상이란 점묘화 속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드는 점의 모양과 색깔은 같은 게 없다. 그 하나의 점에 대한 인생 1/3 결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본다. 또한, 멀리서 보았을 때도 2023년 대한민국의 30대 청년이 출산을 앞두고 가지는 고민과 고충이라는 점에서 그 나름의 재미는 있지 않을까. 

   


유담아, 클리셰일수 있겠지만 너를 만나게 된건 진정 기적이야. 두 개의 세포가 만나, 사람으로 기능할 수 있는, 수만개의 세포가 된다니. 그 안에 숨겨진 모든 생물학적 신호기전과 원리를 다 알지도 못하지만, 설사 좀 더 알게 되더라도 그 신비함에 경이를 표하지 않을 존재가 있을까. 너의 작디작은 손을 잡을 생각에, 너의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할 생각에, 너의 꼼지락거림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응시할 생각에, 너를 내 배 위에 올려놓고 잠들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 아마 난 머리로는 '그래, 이건 신생아 반사 중 하나야' 라며 소아과 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겠지만, 내 입에 번지는 미소는 지식의 경계 바깥이겠지. 


지구의 햇살 아래, 건강하게 너를 만날 그 날까지,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리고 

이야기 속 주인공은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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