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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타 Jun 23. 2021

내가 아프면 누군가도 아프다

<카트> 부지영 2015




1. 내가 흘리는 이 눈물은 분명 수치심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그분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던 때가...

빨리 계산을 해주지 않으면 그 몇 초를 참을 수 없어 짜증이 났고 그분들의 웃음과 인사를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았다.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그저 음성인식 지원되는 기계가 내뱉는 말처럼 상투적으로 들렸다. 그분들의 웃음과 인사엔 영혼이 없다는 걸 안다. 허나 웃음과 인사를 팔아야만 ,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것도. 그렇다 그분들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누르며 감정을 노동한다.



2. <카트>는 여느 집에서의 엄마, 이모, 언니, 동생일 수 있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난 대형마트는 잘 가지 않는다. 대량 생산된 상품이 바벨탑처럼 쌓인 곳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마음을 잃고 길을 잃고 시간을 잃었다. 똑같은 길이 복제된 진열대 앞에선 멀미가 났고 커다란 공간에서 폐쇄 공포증이 생겼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너무나 신속하게 움직이며 기계적인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 사랑합니다"는 멘트가 " 불편했고 어서 그곳을 빠져나오고만 싶었다.




3. 주차장 알바생과 직원 세 명을 한꺼번에 무릎 꿇린 진상 손님은 자신은 고객이고 왕이라고 했다. 고객인 우리에게 서비스가 천국이 될 때 우리는 갑이 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생존 때문에 그만큼의 감정노동의 지옥을 겪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망각한다. 그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도 못하면서 고객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무릎 꿇어야 한다. 보일러실 옆 난방도 안 되는 계단에서 점심을 급히 삼켜야 한다.

서비스업종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은 질환이 방광염, 관절염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서서 쉴 새 없이 일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기 때문인데 거기에 더해 "진상 고객"의 수모까지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이명현상이 오고 정신질환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는 과연 여기서 얼마나 먼 거리에 있었던 걸까.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때, 연민이 아니라 수치심이 느껴진다. 나도 그들의 고통을 더하고 있어 것은 아닐까.




4. 흥미로운 시퀀스 하나,

정규직으로 전환을 기대하며 수당도 못 받는 야근을 밥 먹듯 했던 염정아가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날, 아들(도경수)과 통화하는 장면에 " 우리는 항상 을이다"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당연 한국은 24시간 서비스 노동의 천국이다. 어느 나라를 가도 잠도 안 자고 불 켜진 가게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는 없다. (유럽은 그야말로 서비스의 불모지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 누군가 나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들은 진심을 원한다)

극도의 감정노동으로 피폐해진 영원한 을의 나라와 갑질이 정당한 줄 착각하는 고객의 왕이 지배하는 곳에 정당한 노동권리, 부당한 정리해고, 파업농성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무력하고 진부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언택트 시대가 빨리 다가온 관계로 이런 일자리는 대부분 사라지고 있다. ) 우리 모두는 실업자가 되었다.



 5. 내가 아픈 것처럼 누군가도 아프다. 그걸 모르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 된다. 샤르트르가 그랬던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서히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불친절한 가게가 편하다. 욕쟁이 할머니가 그립다. 우리가 이모님이라고 마구잡이로 부르던 무수한 식당 노동자 "이모님"들도. 그분들도 우리처럼 아픈 사람이기에 나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좋다고, 눈인사라도 한번 제대로 건네고 친절에 감사하다 말하고 싶다.


6. 최초로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노동 상업영화를 기획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 부지영 감독, 그리고 민낯으로 열연한 여성 배우들 모두 감사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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