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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Oct 10. 2024

김민기의 노래하는 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운전 중에 켜놓은 라디오에서 김민기 씨의 부고를 들었다.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를 하얀 물보라로 채우고 있었다. 신호등은 무심히 빨간 불에서 파란 불로 바뀌고 맞은편 길모퉁이에는 편의점이 환하게 앉아있는데, 우산을 받치고 사람들은 무심히 길을 걸어가는데, 이 세상에 그는 이제 없다. 비가 영원히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애도하고 싶었다.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나와 일면식도 없으나 떠나고 나니 내 곁에 있던 사람만 같았다, 그는. 김민기 씨는 이런저런 성격이었어, 이런저런 일을 했고, 이런저런 말들을 했지. 방송에서 그를 추억하는 얘기들을 찾아들었다. 몇 년 전 JTBC 뉴스 인터뷰에서 봤던 그는 지독히도 그 자리를 불편해하던 모습이었다. 수줍다는 말이 딱 적합하지는 않은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불편함이었다. 그의 말대로 무대 뒤편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뒷것'이 갑작스레 조명 아래 놓일 때의 당황스러움이랄까.     


그의 시들을 읽었다. 아니 들었다. 그의 시는 노래이므로. 혹은 그의 노래를 읽었다고 해야 할까 보다. 1집에서 4집까지 세어보니 총 서른아홉 곡이다. 숯처럼 짙고 검은 저음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은 거의 한결같이 슬프고 투명하다. 참 어둡고 참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다. 별명이 석구였다는데. 항상 구석만 찾아 앉아서 구석을 거꾸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아, 참, 사람하고는.  


그는 저항시인이라는 게 자기 얘기 같지가 않다고 했다. 자신은 그저 주변에서 듣고 본 것들을 기록한 것뿐이고 저항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2004년 손석희 씨와 라디오 인터뷰 중에서 그가 한 말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행적을 정리한 다큐를 보면 그가 이 시대의 영웅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 역사의 굴곡이 가장 심했던 시절, 흑역사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 작게 부른 노래가 너무 크게 울려 당황했다던 김민기 씨였지만, 1987년 이한열의 노제에서 거리에 운집한 100만 인파가 일제히 <아침이슬>을 합창했고, 그 자리에 있던 그는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노래는 그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노라고 말했다. 자신을 저항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그가 저항의 의도를 갖고 쓴 곡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노래는 더 진실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진실을 느끼게 마련이다.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놀라운 일화도 들었다. 그는 독재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는데, 조사실에서 한참을 맞다 보니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한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단다. 한없이 미안해지더라고 했다.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서. 겨우 이십 대의 젊은이가 한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사람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그의 노래는 느려서 가사를 바쁘게 받아 적지 않아도 된다. 발음도 또박또박, 꼭 우리말이다. 가끔은 웃음이 지어지는 표현들이 있는데, 가령 '귓가에 시냇물 소리 소골소골 얘기하네' 같은 것. 소골소골이라니! 그의 모든 노랫말은 시어이다. 아주 평범한 일상어가 그토록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운다. 서러운 내 마음이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이슬방울'인 줄을 알았다면 내가 좀 덜 서러웠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테지만, 마음이 거칠게 파헤쳐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는 초라하고 외롭고 어두운 길을 수없이 걸었던 것 같다. 아주 짙은 어둠 속을 위태롭게 헤맨 적도 많았지 싶다. 어두컴컴한 새벽의 초라한 길목에서 '버려진 달빛'이 고인 걸 보고(새벽길) 해 저무는 부듯가에 혼자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이 서 있고(아무도 아무 데도) 검은 산 검은 물에 한밤 중 뱃놀이처럼 배를 젓기도 했던 모양이다(밤뱃놀이). 안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토록 험악한 시절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 노래로 기록했다고 했다.  


새벽길

새벽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 보세

구둣방 할아범 벌써 일어나 일판 벌려놓았네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렸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해진 옷 새로 스며들어오는데      

해말간 새벽길 맨발로 걸어가 봐도 좋겠네

두부장수 종소리 깔린 어둠을 몰아가듯 울리네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렸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해진 옷 새로 스며 들어오는데


그래서 그의 시는 철저히 사실주의적이다. 그가 보는 현실은 낮고 어둡고 누추한 얼굴들이었다. 나는 한때 길음동에 산 적이 있는데 전철역 10번 출구 쪽에 집창촌이 남아있었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집에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집창촌을 끔찍이도 혐오했더랬다. 마치 질병처럼 그 길을 피했던 난데, 이제 그의 <기지촌>을 들으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기지촌

서산마루에 시들어지는 지쳐버린 황혼이

창에 드리운 낡은 커튼 위에 희미하게 넘실거리네

어둠에 취해버린 작은 방 안에 무슨 불을 밝혀둘까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뵈질 않네     

가로등 아래 장님의 노래는 밤새도록 들리잖고

자동차 소리 개 짖는 소리에 뒤섞여서 흩어지네

시계소리 내 귓전에 스치더니만 창밖으로 새어나가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들리잖네     

에 헤에 에 에 헤에 에

밤거리에는 낯선 사람들 떠들면서 지나가고

짙은 화장에 젊은 여인네들이 길가에 서성대네

작은 별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하늘 끝으로 달아나

오늘 밤에는 무슨 꿈을 꿀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그는 공장에서 돌아오는 순이와, 엄마가 헬로아저씨를 따라가서 홀로 남은 혼혈아와, 병든 부모를 두고 돈을 벌러 가야 하는 자식과, 가뭄에 빈 지게를 매고 가는 농부와, 꽃이 시들어 앓아누운 아이를 노래한다. 썩어서 아무것도 살지 않는 연못까지.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푸르던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연못 위에 작은 배 띄우다가 물속 깊이 가라앉으면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가

연못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들게 되죠     

해는 서산에 지고 저녁 산은 고요한데

산허리로 무당벌레 하나 휘익 지나간 후에

검은 물만 고인 채 한없는 세월 속을

말없이 몸짓으로 헤매다 수많은 계절을 맞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작은 연못에 집 잃은 꽃사슴이 산속을 헤매다 연못 물을 마시고 살며시 잠드는-죽는-이 가슴 아픈 장면에 그는 역설적으로 너무나도 예쁜 선율을 입혔다. 그의 시에는 죽음이 짙게 배어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카우트 활동으로 바다로 갔다가 후배가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가 지었다는 <친구>에서부터 이미 죽음은 그의 내면 깊숙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산 것과 죽은 것이 구분되지 않는 깊은 바닷속. 어린 십 대 아이는 죽음과 삶이 둘이 아니란 걸 알았다. 도대체 무얼 살았다 하고 무얼 죽었다 하는가. 모든 것이 어둡고 무겁고 푸를 때, 소리까지 흡수되는 깊디깊은 바다에 잠길 때, 그것은 온통 죽음일 뿐이다. 삶이라는 개념조차 아예 없는 절대 죽음.  


그의 노래에 종종 등장하는 눈과 하늘과 바람과 밤과 바다의 이미지 속에는 죽음이 스며있다. 엄마가 버리고 떠난 혼혈아이는 종이연을 하늘 끝까지, 손 닿지 않는 구름 위까지 날리자는데, 철길을 따라서 뛰어볼까, 철길 저편에서 나는 소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갈 나팔 소리일까 노래하는데(혼혈아) 그걸 듣는 내 마음은 불안으로 조여든다. 사랑하는 백구가 죽던 날에 아이는 꿈을 꾼다. 철 이른 흰 눈이 뒷산에 수북수북 쌓이는 꿈을(백구). 또 날개만 있다면 잣나무 수풀 저 산 너머로, 구름 저편에 외롭게 떠 계신 해님이 계신 파란 하늘까지 날아가고 싶은 아이가 있다(노래극 개똥이 중에서). 난 그 아이가 하늘로 진짜 날아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아이를 붙잡고만 싶다. 들판에 풀잎이 되고 싶고 시냇가에 돌멩이가, 들판에 부는 바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너무 슬프다.


아하, 누가 그렇게     

아하, 누가 푸른 하늘 보여주면 좋겠네

아하, 누가 은하수도 보여주면 좋겠네

구름 속에 가리운 듯, 애당초 없는 듯

아하, 누가 그렇게 보여주면 좋겠네     

아하, 누가 나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네

아하, 내가 너의 손을 잡았으면 좋겠네

높이 높이 두터운 벽 가로놓여 있으니

아하, 누가 그렇게 잡았으면 좋겠네     

아하, 내가 저 들판에 풀잎이면 좋겠네

아하, 내가 시냇가에 돌멩이면 좋겠네

하늘 아래 저 들판에 부는 바람 속에

아하,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해가 저무는 시각, 하늘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곳에 노을이 지고, 끝없이 먼 하늘에 별들이 노래 부르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돈다.  


그 사이

해 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로

하늘은 하늘 따라 펼쳐 널리고

이만치 떨어져 바라볼 그 사이로

바람은 갈댓잎을 살 불어 가는데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해 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 건너에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노을 저 건너에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켜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해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에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사이에

비껴가는 그 사이에

비껴가는 사이에

비껴가는 그 사이에  


개인적으로 나는 죽음이 곁에 있는 게 두렵지 않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삶과 죽음은 맞닿아 하나를 이루고 우리는 그저 동전의 한 면을 지금 살고 있을 뿐이란 생각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사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마도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보는 눈일 것 같다. 김민기 씨가 <작은 연못>을 왜 그토록 밝고 사랑스러운 곡조로 불렀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그가 그런 시선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을 자신의 진실한 친구로 보는 시선. 삶이 그렇듯이. 때로 아니 주로 삶은 죽음보다 더 고달프기에 죽음은 명랑한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다.   


<작은 연못>은 마치 동요 같고 옛날이야기 같은데, 김민기의 노래들을 따라 적으면서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 줄의 이야기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의 노래에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날에 깊은 숲 속에 연못이 있었어,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 말이다. 또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말이야, 개를 키웠는데, 그 개 이름이 백구였어, 하는 이야기. 혹은 식구 생각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  


식구생각

분홍빛 새털구름 하하 고운데

학교 나간 울 오빠 송아지 타고 저기 오네

읍내 나가신 아빠는 왜 안 오실까

엄마는 문만 빼꼼 열고 밥 지을라 내다보실라

미류나무 따라서 곧게 난 신작로 길

시커먼 자동차가 흙먼지 날리고 달려가네

군인 가신 오빠는 몸 성하신지

아빠는 씻다 말고 먼산만 바라보시네     

이웃집 분이네는 무슨 잔치 벌렸나

서울서 학교 댕긴다던 큰언니 오면 단가 뭐

돈 벌러 간 울 언니는 무얼 하는지

엄마는 괜히 눈물 바람 아빠는 괜히 헛기침만

겨울 가고 봄 오면 학교도 다시 간다는데

송아지는 왜 판담 그까짓 학교 대순가 뭐

들판엔 꼬마애들 놀고 있는데

나도 나가서 뛰어놀까 구구단이나 외울까 말까


김민기가 극단 학전을 운영하면서 어린이극에 전념하느라 빚을 지고 끝내는 학전을 폐관할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어린이를 사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노래에는 이미 아이들이 참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작은 연못>이 명랑하고 투명한 선율로 노래되는 또 다른 까닭은 그가 동심으로 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거란 생각도 해본다.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먼 옛날엔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단 이야기 아닐까? 지금 모습 말고 옛날의 그 아름다운 연못을  떠올려보라고 우리에게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민기는 무대에서 어린이극 공연을 할 때 종종 무대를 보러 내려오곤 했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서. 맑게 까르르 웃는 아이들 모습 속에 사랑이 있고 빛이 있고 길이 있다. 우리가 사는 건 아마도 아이들 때문일 것이다. 우리 밖의 아이들, 우리 안의 아이들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살고, 그들 덕분에 산다. 아이의 세계는 완벽했고 서서히 그 세계는 허물어져 우리는 어른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완벽한 이상향에 대한 향수를 품는다. 사람들 중에는 유독 향수가 깊어 병이 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속에 깊이 감춰둔 보물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 헛된 바람이다. 그 보물은 우리가 커가면서 영원히 잃었으므로. 하지만 보물을 현재 갖고 놀고 있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달리고 놀고 자고 떼 부리는 아이들이 아닌가. 김민기의 노래에서 짙은 향수를 느낀다. 그가 이제는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그 영원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곳에서 부디 영원한 아이로 사시기를, 행복하고 평화롭게 안식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러니 이제 이곳에서 비는 그쳐도 좋겠다.


인형     

아가옷을 입힐까 색동저고리 입히지

치만 뭘로 할까 청바지로 하지

청바지에 색동옷 입고

하하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선생님께 보이고 엄마한테 드려야지     

아가씨를 만들까 뾰족구두 만들지

모잔 뭘로 할까 예쁜 고깔 씌우지

하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선생님께 보이고 엄마한테 드려야지     

아가 입을 그릴까 웃는 입을 그리지

그럼 눈도 그려봐 우는 눈은 어떨까

음---- 음----

하하 바보 인형아     

색종이를 오려서 예쁜 인형 만들어

선생님께 보이고 엄마한테 드려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91CPB3w2Q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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