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그림책을 보는 건 마치 남의 집을 방문할 때와 비슷한 것 같아. 우리는 약간 긴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다른 때보다 더 예민하게 풍경과 바람과 냄새와 온도를 느낄 거야. 집 앞에 도착하면 문의 모습도 살펴보겠지. 문이 파랑이구나, 노란 테를 둘렀네, 등등. 초인종을 누르고, 주인이 문을 열어주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현관도 힐끗 둘러보겠지. 그리고 집안으로 주인을 따라 들어가. 기대를 품고서. 집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그림책을 볼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제목부터 읽게 돼.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제목이 인상적이네. 강물처럼 말한다니. 그림책은 표지도 아주 중요하지. 어떤 책이든 표지는 한 사람의 얼굴과 같아. 인상적인 제목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의 표지를 좀 더 자세히 보게 될 거야. 표지의 저 아이가 저 말을 했겠지? 아이는 물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네. 표정이 편안하구나. 그런데 왜 저러고 있을까? 우리에게 여러 궁금증을 품게 만드는 그림이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넌 이미 중요한 걸 알더구나. 그림책은 앞뒤 표지를 활짝 펼쳐봐야 한다는 것 말이야. 이 그림책의 앞뒤 표지를 넓게 펼치면 큰 풍경이 완성돼. 물이 활기차게 흐르는 큰 강에 아이가 눈을 감고 조용히 서 있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글씨가 또박또박 정직하게 적혀있어. 흰색 글씨야. 그 흰색은 풍경과 잘 어울려. 아이의 머리와 어깨 위로 쏟아지는 흰 햇살과 어울리고, 물결 위로 반짝이는 흰 거품과 어울리며, 부드러우면서도 세차게 흘러내리는 초록 물살, 강변의 깊고 푸른 어둠과도 잘 어울려.
그리고 소리. 나는 표지를 보면서 마치 음량을 꺼놓은 것처럼 조용하다고 느꼈어. 아이가 서 있는 강은 세차게 흐르고 있는데 말이야. 아이가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럴까? 아마도 그런 듯 싶어. 아이는 지금 강물의 소리를 귀가 아닌 마음속에서 듣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차근차근 그림책의 제목과 표지를 봤으면 이제 표지를 넘겨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집주인을 따라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거지. 책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집안은 어떤 풍경일까?
눈을 떠요.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싸는 소리가 들려요... 학교에서는 맨 뒷자리에 앉아요. 말을 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아이들은 내가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여요. 아이들은 내 얼굴이 얼마나 이상해지는지만 봐요. 내가 얼마나 겁을 먹는지만 봐요... 아침은 언제나 힘들어요...
괴로워하는 아이가 있어. 남이 괴로워하는 걸 보는 건 힘들어. 샐리, 나도 너처럼 불행한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해서 얼른얼른 그림책을 넘겨. 그림도 이야기도 빠르게 대충 훑어봐. 얼른 독서를 끝내려고 말이야. 그런데 책 마지막에 작가의 말이 있네. 알고 보니, 이 이야기는 글 작가 조던 스콧 자신의 이야기였어.
작가는 어릴 때 말을 더듬었대.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하고 적은 걸 보면 지금도 말을 더듬지 않을까 짐작해 보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어. 아무튼 작가가 어릴 때 학교에서 발표가 있는 날이면 굉장히 고통스러웠대. 입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게 너무 힘들었대. 마치 '배 속에 폭풍이 일어난 것'처럼. 하지만 아이들은 키득거렸지.
학교에서 발표를 한 날이면 작가의 아빠는 학교로 아들을 데리러 오곤 했대. 그리고 강으로 가서 산책을 했어. 강가에서 돌들을 건너뛰기도 하고 연어를 찾거나 벌레를 잡고 블랙베리를 따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지.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고 해.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우리는 대개 '매끄럽고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 말하자면,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해. 외국어를 말해야 할 때라든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어떤 낱말이 기억나지 않을 때, 혹은 긴장하거나 위축됐을 때, 우리는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몸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표정도 어색해져. 그러니까 우리도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이상(!) 말을 더듬어본 경험이 있는 거야.
강에도 강의 어귀가 있고, 물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이 합쳐지는 곳이 있어요. 강물은 자연스레 꾸준히 흐르면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요. 자신의 길을 만들어요. 그런데 강물도 더듬거리며 흘러가요. 내가 더듬거리는 것처럼요.
작가의 아빠는 자연의 움직임 속에도 말을 더듬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아들에게 말해주었어. 강물 속에서는 돌멩이, 수초, 물고기, 다른 방향의 물살 같은 방해물들이 있어서 물이 똑바로 쉽게 흘러갈 순 없잖아. 강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와 사정이 있어. 그래서 강물은, 작가 아빠의 말처럼, 더듬거리며 흘러가.
우리 마음속에서도 많은 사정이 있어서 말이 더듬거리며 흘러나올 때가 있어. 물살이 머뭇대며 멈췄다가 휘돌고 다른 물살들과 하나로 합쳐지며 큰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가 더듬는 말들도 모여서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니? 작가는 이런 말들의 큰 흐름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
말을 더듬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요.
그래, 다른 방식!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방식이 있고, 그러니 말하기에도 수많은 방식이 있겠구나. 그걸 몰랐다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것들, 세심히 이해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작가는 말을 더듬는 것에 대해 깊은 이해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여전히 두렵다고 해. 그것 때문에 철저히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어. 작가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거야. 말을 더듬는 건 두렵고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두려운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이 그림책의 아이처럼 말을 더듬지 않더라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일들은 많고도 많아. 세상에는 슬퍼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 우리는 행복한 일만 경험하고 싶은데 우리를 떠미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건지, 슬프고 괴로운 경험들을 우리는 하곤 해. 두려운 일들을 말이야.
작가는 유창하게 말하는 자기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 자기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라고. 그건 말을 더듬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겠지? 투명한 강물을 들여다보며 강물 속의 사정들을 살피고 물살을 구분하고 물살들이 모여서 세찬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는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느끼며 그것의 아름다움을 경탄하는 일. 강물이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나아간다는 진실. 우리도 강물처럼 하나를 이루며 흘러간다는 진실.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너와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루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진실. 그 진실을 작가는 말 더듬는 고통을 통해서 보고 알게 되었어.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런 진실 따윈 몰라도 좋으니 차라리 말을 더듬지 않기를, 고통이 없기를 우리는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어떤 아픔들이 있지. 그걸 피할 수 없다면, 우리도 작가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의 이 아픔은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라고. 이제 그림책을 마저 읽어볼까.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을 말하기 어려울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해요...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어요. 내가 그런 것처럼요... 학교에 가서 발표 시간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 강에 대해서 말했지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샐리, 그림책은 어린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란 걸 넌 이미 알지? 그림책들이 항상 행복하고 즐겁고 재밌는 얘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거야.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드러내 보여줘서 내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해 주고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그림책도 있어. 이 그림책에는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이 같이 흘러. 아픔을 보듬고 어루만지는 이야기, 아픔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줍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줘.
우리도 이 그림책의 작가처럼 세상의 고통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두렵지만 아름답게.
* 인용한 그림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