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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되기

by 스프링버드


샐리,


나는 네 나이 때 친구 만들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어. 뭐, 지금도 쉬운 건 아니야. 그래서 이 책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나 봐.



이나래 글/그림, 반달(킨더랜드), 2015(초판1쇄)



빵이 새카맣게 탔네. 제목도 '탄 빵'이야. 맛있는 빵도 아니고 탄 빵이라니! 책 표지를 넘기면 구제할 수 없이 타버린 새카만 빵이 두 쪽 책장을 가득 채우고, 다음 장을 넘기면 왼쪽에는 탄 빵, 오른쪽에는 다섯 친구가 그려져 있어. 토끼와 얼룩말과 기린과 박쥐와 너구리야. 그런데 여기에 한 친구가 더 있지. 거북이. 거북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고 책장을 한 장 더 넘겨야 나와. 거북이 표정이 뭔가 아주 곤란해 보이는구나.


'아침입니다.'로 글은 시작돼. 식빵과 토스터가 있어. 똑딱똑딱, 스위치를 누르면 토스터에 불이 들어와. 통! 빵이 튀어나오네. 갈색으로 잘 굽힌 빵에 너구리 꼬리 무늬가 새겨져 있어. 그다음에는 초록색 얼룩무늬가 새겨진 빵이 통 튀어나오고, 그다음에는 토끼 귀가 새겨진 빵이 통 튀어나와. 각자 딱 자기 같은 빵을 구웠어.


그런데 그다음이 심상치 않다! 똑딱똑딱, 순조롭게 돌아가야 할 시간이 엉켰나 봐. 똑 딱 똑똑 딱 딱 딱... 통! 빵이 탔다!





토스터가 문젤까? 그렇진 않은 거 같아. 그다음에 구워진 기린의 빵과 박쥐의 빵은 멀쩡하거든. 친구들은 빵을 들고 식탁에 와서 앉았어. 모두 여섯 자린데 한 자리가 비었네. 뻔하지, 거북이만 안 왔어. 아니, 못 왔어. 어디선가 접시를 들고 망설이고 있겠지. 부엌 문턱에서 서성대고 있을 거야. 거북이는 한두 번 빵을 태운 게 아닌가 봐. '오늘도 거북이 빵이 타 버렸습니다.'라고 한 걸 보면.





친구들은 별말 없이 접시의 빵을 썰어. 친구는 여섯이고 빵도 여섯 조각을 내. 거북이가 어떤 표정으로 식탁 의자에 와서 앉았을지는 모르겠는데, 어느샌가 거북이도 빵을 썬 것 같아. 새카맣게 탄 빵을 말이야. 그다음에는?


잘 먹었습니다.



친구들은 빵을 나눠먹었어. 새카만 거북이 빵도 버리지 않고 나눠먹었어.


친구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고민하던 내가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옆자리의 아이, 앞뒤자리의 아이들, 우리 모두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각자의 세상을 머리에 이고 각자의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을 뿐인데. 가끔씩 조심스럽게 내 문제를 꺼내기도 하고, 시치미를 딱 떼고 마냥 행복한 척하기도 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친구가 재밌어할까 고민하면서 머릿속에서 얘깃거리를 고르다 보면 친구들의 화제는 이미 저 멀리 가버렸고. 누구는 외로워하고 누구는 재밌어 죽고 누구는 지루해하며, 교실에서 친구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을 거야. 때로, 아니 자주, 거북이처럼 문턱 앞에서 망설이고 서성이는 마음이 되어서.


그림책에서는 둥근 식탁에 앉은 다섯 친구가 거북이를 기다리고 있어. "거북아, " 큰소리로 부르면서 "어서 와, 빵 좀 태워도 돼." 하며 야단스럽게 위로하거나 응원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각자의 빵을 썰어. 슥삭 슥삭, 빵 써는 소리만 들려. 무심한 듯 평화로워. 하지만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토끼와 기린은 방 한쪽을 쳐다보고 있고 얼룩말은 그런 기린을 보고 있어. 등을 보이고 있는 두 친구도 곰곰이 거북이를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아마도.





접시에 색색깔 개성 넘치는 여섯 조각의 빵이 모여있어. 네가 혹시 친구 관계로 힘들 때 이 그림을 떠올려봐. 그러면 혹시 너의 고민이 좀 가벼워질지도 모르지. 너의 고민과 타인의 고민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고민이 실은 탄 빵을 들고 주저하는 거북이와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풋 하고 날 수도 있어. 그리고 웃음은 우리를 가볍게 만들어주지 않니? 어쩌면 반대로 우리가 거북이 같은 친구를 둔 토끼와 너구리와 얼룩말과 기린과 박쥐일 수도 있겠어.


느슨한 관계. 서로 같지 않아도 되는 관계. 너는 너의 모습대로 살고 나는 나의 모습대로 살고 서로에게 너무 요구하지 않고 놔두는 관계. 하지만 한 접시에 다정히 같이 담기는 관계. 난 그런 관계를 상상해 본다. 관용과 환대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관계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관용이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한다는 뜻이고, 환대란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한다는 뜻이라고 설명돼 있어. 다르게 말하면, 저기 그림 속의 친구들-그림 밖에 있을 거북이까지 포함한-저 친구들이 관용과 환대의 구체적인 모습이 아닐까? 태운 빵도 아무렇지 않게 먹어주는 너그러움과, 망설이는 친구가 식탁 의자에 와서 앉을 때 반기는 마음. 우리에게, 너와 나에게, 꼭 필요한 두 낱말, 평화롭고 따뜻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행해지는 삶의 두 태도.


그러고 보면, 친구 만들기는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인지 몰라.




* 인용한 그림은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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