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넌 이 그림책이 슬프다고 했어. 우리를 말간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 개, 도봉이를 그린 그림책을 보고서. 도봉이는 하늘나라에 갔고 작가 이초혜 씨의 곁에 없으니까. 그래, 이 그림책은 슬퍼.
하지만 이 그림책은 사랑스럽기도 해. 도봉이는 정말 예뻐. 작가가 도봉이를 정말 어여쁘게 그렸어. 연필로 부드럽게 그려낸 저 작은 개를 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라. 저 그림이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는 건 손으로 그려낸 연필 그림만큼이나 마음으로 그려낸 감정이 부드러워서일 거야.
작가는 도봉이를 추억하고 있어. 도봉이 그리기가 좋대. 도봉이를 '그릴 때마다 도봉이가 하나씩 더 생기기 때문'에. 도봉이를 아주 잘 알아서 도봉이 그리기는 작가에게 쉬운 일이고, 즐거운 순간을 떠올리게 되니 설레는 일이고 행복한 일이기도 해. 자꾸 웃음이 나는 도봉이 그리기. 작가는 말해, 도봉이와 함께 한 순간은 포근하고 반짝이고 따스했다고.
하지만 도봉이를 그리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 이제는 도봉이를 볼 수 없고 쓰다듬을 수 없으니까 말이야. 작가는 도봉이에게 잘해주지 못한 때가 생각나서 속상하고, 보고 싶지만 이젠 그럴 수 없어서 답답하고, 그리움이 쌓여서 아득한 마음이래.
"그런데도" 작가는 좋아서 도봉이를 그려. 그릴 때마다 도봉이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작가는 도봉이와 함께 한 순간을 떠올리며 도봉이와 산책하던 시간들, 도봉이와 같이 잤던 낮잠들, 같이 바라보던 풍경들을 마음에서 건져 올리고 있어.
'그런데도'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봤어. 우리에게는 이 말이 필요할 때가 가끔 있는 것 같아. 슬플 때 특히.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이나 일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누군가와 작별했을 때, 우리의 상황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우리에겐 마음의 방향을 바꾸게 해 줄 게 필요하지. 마치 기찻길의 궤도를 바꿔주는 것처럼 말이야. 이초혜 작가가 도봉이를 그릴 때 슬프고 속상하고 아득하지만 '그런데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개 그림도 참 예쁘지?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이야. 호크니는 친한 친구를 잃고 아주 슬펐을 때 자기도 모르게 개 그림을 그리고 있더래. 저 개 두 마리는 화가가 키우는 개야. 슬픔 곁에 사랑이 있네. 친구는 떠났지만 '그런데도' 친구는 곁에 그대로 있어. 사랑스러운 개의 모습으로.
오늘은 비가 와. '그런데도' 나는 우산을 펼치고 산책을 나가볼래. 어제는 마음이 아주 복잡했어. '그런데도' 오늘 난 참을성을 갖고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길 기다려볼래. 누군가에게 나는 못된 말을 하고 못된 말을 들었어. '그런데도' 미워하지 않을래, 나도 그 사람도. '그런데도'라는 말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참 다행.
우리의 하루는 많이 실망스럽고 조금 행복할지 몰라.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데도'가 있지. 이 낱말로 마음의 궤도를 바꿔보면 새 길이 열리고, 새 시간이 오고, 좋은 일도 만나지 않을까? 아니면 이 말을 또 써보는 거지. 그런데도!
* 인용한 그림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설명은 권연희 작가님의 글에서 빌렸습니다. 작가님께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imlostinart/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