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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펼치고

by 스프링버드


샐리,


우리가 나눠 먹은 튀르키에의 전통 간식 피스마니에, 정말 달았지? 그건 솜사탕 같기도 하고 꿀타래 같기도 했어. 넌 유튜브를 통해서 이미 아는 과자라고 했는데 진짜 먹어보는 건 처음이라면서 아주 좋아했지. 과자가 약간 밀가루 맛이 난다는 것도, 그게 과자를 성형할 때 전분을 넣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어서 난 살짝 놀랐는데,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 영상을 많이 찾아본다는 네 말을 듣고 웃음이 났지. 너의 호기심이 귀여웠어. 호기심은 좋은 거야!





네가 날 놀라게 한 건 또 있었어. 네가 여러 나라의 국기를 알고 있어서 난 깜짝 놀랐지 뭐니. 내가 아는 국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넌 프랑스 국기가 어떤 색깔에 어떤 순서인지까지 알더라.러시아와 이탈리아 국기도 알고 말이야. 혹시 우리가 인도 국기도 같이 봤던가? 주황색과 흰색, 초록색의 조합은 인도에 대한 인상을 다른 세 나라와 살짝 다르게 만드는 것 같아. 정중앙의 수레바퀴도 특이해. 인도에서 수레바퀴는 깊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진리는 지속되고 퍼져나간다는 걸 뜻하거든. 멋진 비유지?




마침 난 너에게 넓은 세상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그림책들을 찾아보던 중이었는데, 세계의 음식과 국기를 다룬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지 뭐니. 바로 이 책이야.




김은영 글/그림, 비룡소, 2024


내용은 조금 유치하달까. 주인공이 냠냠나라 공주의 생일 파티에 가지고 갈 선물을 마녀와 돼지 악당이 훔쳐가고 주인공이 둘을 쫓아가는 이야기거든. 그런데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가 바로 음식 속이야.



어이쿠! 비빔밥 정글로 도망가네! 너네 거기 안 서?




마녀와 악당이 도망치는 곳, 우리의 주인공이 뛰어드는 곳은 비빔밥, 치즈 퐁뒤, 케사디아, 쉐이브 아이스, 난과 카레, 쌀국수, 스트로프바펠, 초밥, 뽀모도로 파스타 속이야. 그곳은 정글이고(비빔밥정글), 폭포(치즈퐁뒤폭포), 동굴(케사디아), 해변(쉐이브아이스 해변), 언덕과 강(난언덕과 카레강), 길(쌀국수길), 정원(스트로프바펠정원), 섬(초밥섬), 화산(뽀모도로파스타화산)이지. 음식의 세계는 아주 거대해. 혹은 그림책의 인물들이 아주 작은지도 모르고.


음식의 세계 속에서는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자연이 펼쳐져. 가령 비빔밥정글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풍물놀이를 하고 윷놀이를 즐기지. 한쪽에서는 줄다리기를 하고,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어. 북청사자놀이도 한창이고. 그네를 타는 춘향이는 활짝 웃고 있네. 한쪽 구석에서 호랑이 세 마리가 놀라서 도망치는데, 아하, 돼지 악당을 만났구나!


치즈퐁뒤폭포의 세계로 들어가니 알프스산이 나오네. 케사디아동굴의 세계는 온통 시뻘게. 토마토 때문에. 멕시코인들은 케사디아 세계에서 전통 모자를 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어. 프리다 칼로라는 유명한 멕시코 화가는 자화상을 그리고 있고. 난언덕과 카레강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온통 낙타야. 초밥섬의 세계는 어떨까? 어부들이 낚시를 하고 한쪽에서는 오코노미야키를 굽고 있네. 돼지 악당은 일본의 전통 신발인 게다를 신고 부채까지 들고 있어. 일본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는 사람들도 보이는구나.


마녀와 악당을 찾느라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치고 다니며 여기저기 기웃대다 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는데, 선물은? 당연히 찾지! 그런데 주인공이 마녀와 악당을 물리치고 선물을 찾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사람이 거대한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먹다가 선물이 튕겨서 공주님의 생일 파티 장소에 탁 떨어져. (뭐, 그림책이니까.) 책 한 권을 다 보고 나면 전 세계를 신나게 돌아다닌 기분이다. 작가는 이 그림책에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놓은 것 같아.





그리고 책 마지막에는 네가 좋아하는 국기가 나오지! 우리가 헤집고 다닌 음식들의 나라인 한국과 스위스, 멕시코, 미국, 인도, 베트남, 네덜란드, 일본, 이탈리아의 국기 말이야. 넌 아마도 더 많은 국기를 알 테지만, 그래서 이 정도론 만족하지 못할 테지만, 난 좋아. 너무 많이 알아도 머리가 복잡해.


멕시코 국기가 초록, 하양, 빨강의 세로 칸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난 몰랐어. 이탈리아 국기와 똑같은 모양인 걸 보면 이 두 나라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다른 점은, 멕시코 국기의 정중앙에 뱀을 잡아먹는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야. 독수리는 꽃이 핀 선인장 위에 앉아있어. 아주 멋진 형상이야. 하지만 국기 그리기가 쉽진 않겠어.






음식을 음미할 줄 아는 예민한 입맛과 국기의 특징들을 알아보는 예리한 눈을 지닌 샐리, 호기심과 세심함을 갖춘 샐리야. 그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넌 알고 있을까? 우리가 호기심으로 얼마나 근사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세심함으로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이야. 호기심은 세상의 문을 열고, 세심함은 발밑을 잘 살펴보며 나아가게 해 주지.


세상은 넓고도 넓어. 그 안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겠지. 그림책에 그걸 다 담는 건 불가능해. 우리나라에 음식이 비빔밥만 있진 않고 일본사람들도 초밥만 먹고살진 않으니까. 수십 년을 서울에 살았어도 내가 아직 서울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할지 상상이 가질 않아. 모르는 골목들, 모르는 구석들, 모르는 풍경들,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삶의 모습들. 모두 모르는 것들뿐이야. 같은 하늘 아래 사람들이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마음이 겸손하고 경건해져. 어른인 나도 배울 것 투성이고, 너는 더 그렇겠지? 나는 매일매일 내 좁고 단단한 세상을 깨뜨려야 하고, 넌 매일매일 너의 작고 말랑한 세상을 키워나가야 할 거야.


샐리, 네가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나야 할 세상은 저 거대한 비빔밥정글보다 더 복잡하고 넓을 거야. 그 속에서 넌 수시로 길을 잃겠지. 그래도 네 안의 호기심은 계속해서 너의 등을 앞으로 밀지 않을까? 복잡한 정글의 수풀을 헤치고 나가서 치즈폭포 속으로, 파스타화산으로 들어가게 할 거야. 아마도 그럴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네가 넓고 넓은 미지의 세상을 탐험했으면! 그래서 맨 마지막 장을 열고 국기까지 만나봤으면! 각 나라의 국기들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상상해.


넌 유튜브를 보며 세계 각국의 음식을 눈으로 맛보지만 진짜 세상으로 나가는 건 다른 문제여서, 그건 너의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이야. 단단히 마음을 먹고(하지만 너에겐 호기심이란 굉장한 무기가 있지) 지도를 펼쳐서 모르는 길로(하지만 너에겐 예리한 관찰력이 있지) 나서야 하는 일. 온몸의 감각을 열고 세상을 배워나가는 일. 넌 익숙하고 작은 동네에서부터 점점 반경을 넓히며 나아가다가 결국에는 바다를 건널지도 몰라. 새로운 대륙에 발을 디딜지도 몰라.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모르는 음식을 먹고, 낯선 문화를 만나고, 놀라운 발견을 하고, 결국에는 멋진 선물을 찾게 될지도. 냠냠나라 공주님의 생일파티가 얼마나 굉장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인용한 그림들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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