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지리적 위치부터가 독특하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자리 잡아 대양을 온몸으로 품고 있지만, 반대편을 보면 스페인이라는 거대 제국으로 둘러 쌓인 꼴이다.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최고의 자리에 있던 포르투갈이지만 그런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서유럽에 속한 국가, 하지만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나라. 에펠탑이나 런던 브리지 같은 딱히 유명한 건축물도 없고, 알프스 같은 유명한 산도 없다. 널리 알려진 도시라고 해봐야 리스본과 포르투 두 개 정도.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온화하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을 행복으로 정의한다면, 포르투갈이야 말로 딱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 테면 현지어를 몰라서 겪는 수모나, 불친절이나 인종차별이 다른 서유럽 대도시에 비해 덜 한 편이다. 내가 이 나라를 몰라서, 그 언어를 몰라서 느끼는 긴장이 덜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화려함 과는 거리가 멀다. 명품의 원산지가 수두룩한 유럽에서 포르투갈은 자체 명품 브랜드가 없다. 수도 리스본에서도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 브랜드의 로드샵 하나 찾을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브랜드를 선망하는 일개 중산층이지만, 그런 가방을 소유하는 것이 보이는 그대로 행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가깝지. 100만 원짜리 가방을 사서 행복을 얻은 사람은 머지않은 미래에 200만 원짜리 가방을 사길 바라기 마련이니까. 내가 보기엔 포르투갈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가 지금의 리스본을 설계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고민을 수 없이 했음에 틀림없다.
어느 책에서 말하길, 사람들은 행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야자수와 바닷가와 파란색 음료를 떠올린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풀장 안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있다면 더 좋겠다. 그런 게 낙원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살라고 하면 힘들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요소(예를 들면 편의점)들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포르투갈이 꼭 마음에 들었다. 리스본에서 차로 20분 안에 갈 수 없는 곳이라면 별로 가볼 만한 가치가 없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도시가 필요 이상으로 크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도시 생활의 단점이 장점을 압도하기 마련이다. 숨이 막힐 듯한 교통체증과 매연, 불필요한 소음들. 인구 50만 명의 이 도시는 우주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너무도 잘 안다. 비록 그 자리가 보잘것없다고 할지언정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한다. 모국어를 두고 영어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여기서는 낙인이 아니다.
눈부시게 화려하거나 웅장하고 거대한 것에서 벗어난 도시. 적당히 번화하고, 적당히 붐비면서 스트레스로부터 한발 멀어진 곳. 머나먼 이국에서도 내가 가장 덜 변하고, 나인채로 있을 수 있는 곳. 만약 살아본다면 포르투갈에서 살아보고 싶다. 아, 물론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나의 사랑 카타플라나(Catapl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