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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낙 Jan 06. 2025

[불교철학] 동일성과 차이에 대하여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때 '동일성'과 '차이'이 두 가지 기준으로 인식합니다.  


 예컨대 누군가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그냥 '나뭇잎'으로 퉁쳐서 인식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모양과 품종에 따라 단풍잎, 은행잎, 솔잎 등으로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또, 색으로 구분하여 초록잎, 노랑잎, 갈색잎, 빨간 잎, 검은 잎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상태에 따라 찢어진 잎, 젖은 잎, 썩은 잎, 그리고 각도, 빛의 양 등 특정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나뭇잎 하나만 봐도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로 인식할 수 있죠. 극단적이긴 하지만 나노 단위까지 본다면 세상 모든 나뭇잎은 절대로 동일할 수 없고,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의 색 또한 미묘하게 모두 다를 것입니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뭇잎들은 다른 잎들과 완전히 똑같을 수 없는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비단 나뭇잎뿐만일까요? 세상에는 차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지개색을 고작 7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지만, 실상은 셀 수 없는 스펙트럼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같은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이것이 차이의 인식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도 이런 맥락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보지 못하는 상태를 불교에서는 무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상이라고 해서 차이로만으로 세상을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매우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매번 모든 사물을 다르게 인식한다면 매번 다르게 명명해야 할 것이고, 인식체계가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저기 가로 3센티가 찢기고, 젖어있는 노란색 은행잎 옆에 떨어진 빨간색 단풍나무 좀봐"라고 명명하는 것은 매우 불편할뿐더러 이 마저도 차이의 인식으로만 본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름을 붙이게 할 수 있는 언어라는 체계 자체가 동일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아니지만, 도가의 명가명 비상명이란 구절이 차이를 담지 못하 언어의 한계를 간파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차이만을 인식한다면 언어와 같은 체계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동일성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유용한 툴이 됩니다. 동일성을 이용한 인식체계가 그러합니다. 덩치가 크고 이빨이 날카롭고, 사나운 동물을 맹수라고 불리고,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인식체계가 인간에게 없었다면 인간은 이미 멸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각기관과 뇌의 용량 등 신체적, 물리적 한계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차이의 실상을 온전히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동일성 추구(무지)는 필연인 것입니다. 플라톤도 이런 필연에 도움을 받아 이데아를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동일성과 차이 중 무엇이 더 우월하고, 둘 중 어느 것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차이는 실상이고 동일성은 필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괴롭고 불행한 이유는 동일성보다는 차이를 망각하고 있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차이라는 실상을 망각하고, 동일성만을 보려 하기 때문에 다르고, 변해가는 것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거나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전혀 딴판인 현실과 생각,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동일하지 못한 사람들이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맞추려고 하며, 미워하고, 다툽니다. 물론 스스로 차이를 온전히 느끼고 실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쉴 새 없이 자신의 몸과 시야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심하면 허무라는 미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해 조금은 애써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차이의 실상을 온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차이 자체,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호한 실상들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편안하게 누워있는 와불상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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