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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기 Jul 13. 2021

팬데믹을 견디게 해주는 것들 1. 여행의 기억


  전날 몸을 무릎을 세운 채 둥글게 말고 넷플릭스를 보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걸치고 아침밥을 우걱우걱 먹던 자리에서, 적당히 주위를 치우고 회사 노트북을 켰다. 원룸에서 재택근무를 하면 집이 곧 회사일뿐만 아니라, 한쪽 구석에 놓인 테이블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카페에도 갈 수 없는 팬데믹 속, 내게 일과 일상의 공간 분리는 불가능하다. 내게 남은 것은 시간 감각뿐이다. 8시 45분, 48분 32초, 50분 6초... 19분 4초의 자유가 남았다. 주위에 생활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로 직장인 모드로 돌입하기 위해 노동요를 고르는데,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한국인이 좋아하는 라틴음악으로 이끌었다. 휴게소 한편에서 먼지가 쌓이고 있는 음악테이프 이름 같은 플레이리스트는 적어도 내 취향을 딱 맞추긴 했다. 첫 곡이 바로 그 유명한 Despacito였다.


  Despacito는 매번 나를 스리랑카 남부의 해변의 번개 치는 밤으로 데려간다. 게스트하우스 한편에 딸린 수영장에 둥둥 떠서, 부슬비를 맞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날로. 천둥은 치지 않았고, 소리 없이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보라색 하늘에 검은 야자수 모양 도장이 꽝꽝 찍혔다. 얼굴에 닿는 느낌조차 없는 비는 은실같이 내려왔다. 그때 수영장 한편에 놓인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Despacito였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치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리는 그날의 장면 속에 있을 수 있던 것은, 사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3년 전, 나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후 오직 서핑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스리랑카로 건너갔다. 16살쯤인가, 서핑하는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 블루 크러쉬를 본 이후로 서핑은 늘 내 버킷리스트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여행할 때 계획이라고는 없이 꽂히는 것 딱 하나만 보고 가는 나에게, 스리랑카 남부 해변이 수심이 얕고 사시사철 초심자들에게 좋은 파도가 밀려오며, 심지어 서핑 교습 가격도 싸다는 정보는 스리랑카행 티켓을 끊기에 충분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유리창 하나도 없이 창문이 뻥 뚫려 바람이 슝슝 들어오고, 맨앞에서는 검은 연기를 끊임없이 피워올리는 낡은 기차를 타고 졸면서 웰리가마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딱 봐도 베테랑인 호주인 서퍼 - 14살부터 서핑을 했다고 한다 - 를 만났고, 그 길로 말을 붙여 괜찮다는 서핑강사를 소개받았다.


  나조차도 놀라운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강습까지 일사천리로 예약해 사흘 동안 파도에 엎어뜨리고 메쳐진 후에, 나는 서핑보드 위에 선 채로 유유히 해변가로 도착할 수 있는 베이비 서퍼가 될 수 있었다. 서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서핑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단언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파도를 탈 수는 없었다. 내가 탈 수 있는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나는 보드 위에 엎드린 채로 기다려야 했다. 파도를 볼 줄도 몰라 강사님이 신호를 주면 땅 위에서 배운 것과, 몸의 감각, 그 둘 사이에 균형을 조절하며 재빨리 일어서 물살의 흐름을 타야 했다. 내가 탈 수 있는 파도를 구별하면서 자유자재로 타려면 힘도 좋아야 하고, 연습도 많이 해야 했다. 때로는 운도 따라야 한다. 이게 인생이 아니고 뭔가! 수차례의 연습 끝에 투명한 해변가에 닿아 뜨거운 모래에 발을 디딜 때, 애송이 베이비 서퍼는 동시에 인생을 헤쳐나가는 작은 비결을 알게 된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 결국 다리에 탈이 났다. 돌아보니 한 달 넘게 인도와 네팔에서 현지인이 타는 기차와 버스를 마다하지 않고 타는 - 심지어 창문이 덜덜거리며 자꾸만 열리는 20년은 된 버스를 10시간 동안 타고 칠흑 같은 밤에 히말라야 산맥을 넘었다 - 험한 배낭여행자로 다니느라 체력은 이미 골로 간 상태에서 서핑을 배우고 있었다. 힘이 자꾸 빠지니 보드에서 일어설 때마다 미끄러졌고, 무릎을 먼저 세우는 쪽 다리가 나가버렸다. 심지어 전날은 이제 서퍼가 되어서 신난 상태로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옆동네 ‘갈레’ (또는 골)에 놀러 갔다 왔다. 그러고서도 시간이 아깝다고 다음날 또 서핑을 했으니, 바다는 내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파도의 놀잇감이 될만 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 초보자들의 경우 서핑 인증샷은 꼭 서핑 전에 찍어야 한다. 서핑을 하다 보면 물미역에 감긴 불어 터진 문어가 되기 십상이니까. 나는 제대로 된 서핑 인증샷이 한 장도 없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를 외쳐 기어이 해변가에 서서 오는 것을 성공하고 난 이후에야 보드와 헤어졌다. 그리고 도로에서 소처럼 누워 자고 싶은(정말 소가 도로에 누워 자고 있었다) 유혹을 뚫고 거의 기어서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점심부터 곯아떨어졌다. 배고픔에 깨고서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머리맡에 있던 바나나를 겨우 입에 넣고 다시 자는데 숙소 문이 쾅 열렸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쌍둥이 같은 인디안 두 명이 젖은 생쥐 꼴로 재잘거리며 들어왔다.


이틀 동안 방을 같이 썼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흔적만 남아있던 침대의 주인공들이었다. 듣자 하니 새벽마다 나가 미리사, 마타라 같은 주변 도시에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고 돌아오느라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외모도 키도 옷차림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고, 바이크도 똑같이 타고, 스스럼없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무엇보다 대화를 하면서 서로 큰 소리로 외쳐대길래 죽마고우인 줄 알았더니 스리랑카 공항에서 처음 만난 사이란다. 그것도 놀라운데 하루 종일 바이크를 탔다면서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내가 너네 자매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웃어댔다. 자기들도 신기하다면서 껄껄대며 샤워실로 들어가더니 이번엔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며 말했다. “같이 수영장 가서 놀지 않을래?” 시계를 보니 밤 10시였다. 롸?


잠시 고민했다. 며칠 전부터 수영장에서 한번 놀고 싶었는데 수영장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망설이고 있는 차였다. 그런데 인디안 친구들이 거의 나를 떠밀다시피 일으키며 불을 지폈다. 이렇게 놀러 나와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며, 청춘을 불태워야 한다며, 그 미친 텐션이란. 나는 못 이기는 척, 내일의 나에 대한 걱정은 밀어버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비 내리는 수영장으로 따라나섰다.


마침 뒤쪽에 메리어트 호텔이 있었고, 우리가 있는 곳은 호텔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게스트하우스였지만 각도 때문에 마치 그 호텔의 수영장에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호텔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자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그들 중 한 명이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 한다며 노래를 틀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나를 고려해 바로 신중하게 선곡한 노래가 Despacito였다. 전세계를 강타한 그 흥겨운 라틴리듬을 느끼며 물에 둥둥 뜨는데, 머리 위로 은색 빛줄기가 부서졌다.


“Look!”


둘 중 누군가의 외침에 하늘을 바라봤다. 적도에 가까운 나라라 하늘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낮았다. 밤이라 높이감도 사라졌다. 번개가 몇 번이고 다시 쳤다. 번개가 칠 때마다 밤하늘은 보라색으로 변하고, 담장 뒤로 선 야자수가 검게 드러났다. 그때마다 직선으로 꽂히는 빗줄기가 보였지만, 몸에 닿는 순간 사르르 없어지는 듯 했다. 순전히 어릴 적 로망으로 시작한 나의 웰리가마 서핑 여행이, 자연이 마련해준 클럽 풀파티까지 선물해주었다. 여행을 하다가 샛길로 새다보면 이런 즐거움도 있다. 나는 몸을 물 위에 뉘어 잠길락, 말락 하는 그 순간을 즐기며 남국의 보랏빛밤을 오래오래 눈에 담았다. 마치 나를 둘러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빠른 박자의 노래만이 시간이 제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despacito, despacito (아주 천천히).


엉겁결에 만난 그 장면은 그 후로 두고두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되살아난다. 팬데믹으로 외국으로 여행을 갈 수도, 고향에 마음 놓고 갈 수도, 이제 집 안에서조차 일과 일상의 공간을 분리할 수도 없는 나에게 여행의 기억은 나를 잠시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가 주며 숨통을 틔운다. 이상하게도, 특히나 사진조차 찍을 생각을 않았던 순간들이 더 그렇다. 히말라야의 밤추위에 덜덜 떨다가 휴게소에 닿아 짜이 한잔을 마셨을 때 뱃속을 데우는 뜨끈함, 그리고 습한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은 새벽의 콜카타 거리 곳곳에서 쓰레기 태우는 냄새, 천년동안 점점 더 위로, 위로 쌓은 듯한 건물이 좁개 들어서 해가 거의 들지 않는 바라나시 골목에서 메아리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말이다. 기억은 감각을 가리지 않아 냄새를 맡을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있어 나를 그때의 그 순간에 잠시 머물게 한다.


이 답답한 나날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또 언제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내 여행의 기억은 몇 번이고 다시 들춰봐도 재미있으니까. 심지어 기억들은 서로를 캐내고 엮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고, 때로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장르의 영화로, 생경하지만 그곳이 떠오르는 음악을 찾아보게 하며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그렇게 나는 방구석에서 새로운 탐험을 시작한다.


이 하루하루가 너무 답답하고 지겨운가요? 자, 이제 눈을 감아 봅시다. 한번 떠올려봐요. 정말 사소한 기억이라도 괜찮아요. 이탈리아 로마의 어느 골목 구석 돌길, 전주의 맛집 웨이팅 줄, 동해안 도로에서 그저 풍경에 이끌려 차를 세운 한적한 포구, 그 어디든 당신이 몇 초라도 머물렀던 과거의 어느 여행지로 가는 거예요. 잊고 있었던 어떤 작은 감각이 당신의 손끝, 발끝, 또는 코끝에서 스멀스멀, 당신을 그날로 데려가 줄 테니까. 혹시 알아요? 당신이 그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기억의 렌즈 속에서 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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