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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기 Jul 15. 2021

팬데믹을 견디게 해주는 것들 3. 인연


한참 고민했다. 대상이 친구라고 하기엔 범위가 좁고, 타인이라기엔 너무 방대하며, 대인 관계는 깊은 맛이 없다. 고민 끝에 고른 단어가 인연이다.


코로나 시국에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세월 속에 점 하나와 같은 현재에서, 한 세 발짝 정도 둥둥 떠서 돌아보면 이 시국을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간관계 변화를 이미 겪었다. 그전에 인간관계의 양상과 층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들은 - 현재 진행형인 곳도 있지만 - 신분제의 붕괴, 산업혁명 뭐 그런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 맺음이 변화하는 것을 인류가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전 세계로 들불처럼 퍼지면서, 어떤 형태든 인연 맺은 이들과 2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가족일지라도. 인간의 역사 속에 전지구가 이렇게나 단 시간 내에, 인간관계의 형태가 공통적으로 변한 시간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여러 팬데믹이 있었지만 전 세계가 이렇게까지 연결된 적은 없었으니 아마 역사상 최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국에 적응하기까지는 마치 여러 인연을 시험대에 올린 것과 같이 느껴졌다. 평소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라는 식이라 인연에 그리 공을 들이지 않았다. 인연의 소중함을 몰랐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십 대의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관계들로 인한 후유증도 한 몫했었다. 이십 대 내내 세상은 넓고 인간은 너무 다양하며, 상대방이 항상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음을 배웠다. 그러다 코로나 시국에 연 나이로 서른을 맞이했고, 드디어 지인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데 익숙하며 내 페이스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뒤집혀버렸다. ‘서른이 되면 말이야...’라고 으레 시작하는 관계 맺음의 변화에 대한 간접경험들은 반 정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아니 서른도 처음인데 역사상 이런 일도 처음이라니까? 휴대폰으로 원하면 언제나 말을 걸 수 있고, SNS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알 수 있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들과 실시간으로 일도 하는 데 만날 수는 없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그 짧은 사이 사랑도 지나가고 근근이 이어온 동기 사이가 다하기도 했으며 반대로 오히려 스쳐 지나갔던 외국인 친구와 끈끈해지기도 했다. 관계 유지의 관건은 모두 물리적 거리로 생겨버린 빈 공간을 극복할 수 있느냐였다. (극복을 아주 적극적으로 해서 생각지도 않다가 결혼을 강행한다는 친구도 있다)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수록 약해지는 관계는 끝이 났거나 어정쩡하게 마무리가 지어지는 중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인 친구와의 물리적 거리는 옆동네 사는 친구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게 되다시피 한 데다 코로나라는 공통의 적이 생겨 더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했다. 떨어져 사는 가족과도 코로나 이전보다 연락을 오히려 더 자주 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코로나로 하나 배운 것, 많은 인연들이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고, 서로가 조금의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연은 끊기기 쉽다.


메신저를 울려대는 별 것 아닌 일상의 대화들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 준다. 오늘은 한 카톡방에서 잔여백신을 얻기 위한 광클전쟁이 일어났다.


"아, 갑자기 마감 떴는데? 뭐야?"

"오늘 곰돌이 줘팬다."

"언제 뜨는 건데.."

"알람 왔는데 누르자마자 없어짐."


하루종일 집착어린 대화가 오갔고, 덕분이 분명 방안에 혼자 있는데 제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까지  정도였다.


문득 생각나서 연락을 하거나 저쪽에서 안부를 물어와 아직 너와 나의 사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더 반갑다. 멀리서도 곁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결코 쉽지 않으니, 소중하다. 오랜만의 안부에는 건강한지 꼭 물어보고 대화가 끝날 때는 서로의 안전을 빌어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을 서로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 팬데믹 속에 이어지고 있는 인연들은 겉으로는 느슨해 보여도 속은 더 단단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팬데믹이 끝나고서 다시 자연스레 이어 붙여지는 관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코로나 끝나고 만나자는 이야기를 골백번을 하고서도 한동안 만나지 않다가, 어어어 하는 사이에 다시 이어 붙여지는 인연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리고 어떤 인연도 팬데믹을 통과한 관계보다 깊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날벼락처럼 끊어지고, 갑자기 찾아와 어쩌면 평생 동안 보게 되기도 하는 게 인연이니까, 또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게 될 테지. 하나 분명한 것은 특히나 이렇게 힘든 순간에, 기댈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은 분명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요소이며, 붙잡아야만 인연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지만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메세지를 보내봐야겠다.


“잘 지내고 있어? 건강해? 코로나 끝나면 한번 만나자. 빈 말 아니고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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