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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나 Dec 07. 2020

바람소리

영종도 씨사이드파크

 

 귓가에 아직도 바람소리가 맺혀있다. 

 

 늘 기운 없이 침대에만 붙어있던 나를 조금이라도 걷게 해 준 그곳, 영종도.


 영종도라는 낯선 곳으로 이사를 온 지 4개월. 영종도가 좋아서, 영종도에 꼭 와야만 해서 온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약간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언가로부터 조금은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오게 된 이곳에서도 초반엔 예전과 다름없이 게으른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집을 꾸미고 청소한다며 부산을 떨더니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침대에서도 소파에서도 이불을 뒤집어쓴 채 TV 혹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중 조금씩 이 곳 영종도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다. 봄이라는 따뜻한 향기가 훅 하고 콧속으로 들어왔다. 황량한 갈색 혹은 잿빛 투성이던 창밖이 조금씩 연둣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또 변해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통장 잔고와 체중계의 숫자.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진작에 움직였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외면해온 그 시기가 오고 말았다.


 우선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먹어버린 나이. 내세울 것도 없는 경력 등은 나에게 쉽게 돈을 벌 곳을 물어다 주지 않았다. 그러다 적은 돈이지만 아예 안 버는 것보단 낫기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운 좋게 아주 가까운 곳으로 구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 모두가 축 늘어져있던 상태여서 그런지 짧은 시간 아르바이트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긴장되고 어색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고 제일 먼저 걸었던 코스는 씨사이드파크 스카이데크에서부터 중산동 방파제가 있는 곳 까지였다. 왕복을 걸을 자신이 없었기에 버스를 타고 해맞이공원 정류장에서 내린 후 스카이데크에서부터 바다를 곁에 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도중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탐조대가 있었다. 도요새, 저어새, 기러기, 갈매기 등 천연기념물 혹은 멸종위기종의 새들이 이 곳 영종도에 찾아온다고 한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망원경으로 새들 구경을 해보았는데 그날은 그렇게 많은 새들이 있지 않았다.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평소 20분에서 30분만 걸어도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이 날은 무려 1시간 정도를 걸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너무나 상쾌하고 뿌듯했다. 그 후로 집 근처 체육공원 트랙을 걷기도 하고 집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는 코스로 씨사이드파크를 매일 걷고 있다. 


 요즘 들어 날씨가 좋다 보니 휴일에는 주민들이나 관광객들로 씨사이드파크가 꽤나 붐비지만 평일에는 정말로 한산하다. 걷는 내내 들리는 소리는 모두 자연의 소리이다. 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처음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그래야 덜 지겨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을 꺼버렸다. 음악소리도 물론 아름답지만 지금 이곳에서 걸을 때만큼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약간 독특할 수 있겠지만 나는 까마귀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까마귀 울음소리를 좋아하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리는 까마귀 소리를 좋아한다. 전에 살던 복잡한 동네에서도 이따금씩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었는데 이 곳 영종에는 까마귀가 참 많다.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뭐랄까, 청정한 시골에 놀러 와 휴가를 즐기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까마귀뿐만이 아니라 까치와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걷는 걸음까지 신이 나고 마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지겨움이 달아난다. 


 또한 내 귓가를 마구 호강시켜주는 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람소리이다. 한적한 도로나 공원을 혼자 걷고 있을 때 마구잡이로 나에게 다가와 솨- 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바람. 타 지역보다 바람이 많이 불어 곤욕인 날도 많은 곳이지만 적당하게 센 바람은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기도 하고 멋진 풍경의 영화나 광고의 한 장면으로 나를 데리고 가게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그 바람소리를 느끼고 싶어서 난 그렇게 매일 걷고 또 걷는다. 


 인천이라는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에서 이렇게 걷기 좋은 동네가 과연 몇 곳이나 있을까.


 또 하루는 남편과 함께 걷게 되었다. 씨사이드파크에 중산동 방파제라고 있는데 금, 토, 일 주말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고 하여 방문을 하였지만 너무 일찍 간 탓일까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해물라면을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허탈함과 허기짐이 몰려왔다. 어디를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남편이 구읍뱃터에 가보는 건 어떠냐며 제안을 해왔다. 구읍뱃터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날씨도 좋았고 혼자가 아니니 더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굴러가는 레일바이크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레일바이크 시작점이 나타났고 영종진공원을 넘어서니 구읍뱃터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인천에 처음 이사 왔을 땐 이미 영종대교가 생긴 이후라서 인천에서 영종도에 가기 위해서는 뱃길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천 토박이인 남편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월미도에서 영종도를 거쳐 섬 여행을 할 때 항상 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문득 과거의 인천 그리고 과거의 영종도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다음엔 지나오면서 마주쳤던 영종역사관에 꼭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남편과 나는 얼른 배를 채우러 회센터로 들어갔다. 가장 저렴한 구성으로 주문을 했음에도 서비스도 넉넉하고 회맛도 참 좋았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회 한 점을 먹으니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집에서 잠깐 걸었을 뿐인데 여행이라도 온 듯 한 기분이었다. 비행기나 타야 여행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는 했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로는 하루하루가 여행 같다. 


 식사를 마치고 부둣가 근처에서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바닷바람과 깨끗한 공기를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난 이 곳 영종도가 더 좋아질 것만 같다. 이 곳에서 더 오래 지내고 싶어 졌고 영종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졌다. 차가 없어서 많은 제약이 있겠지만 더 많은 곳에 가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내 귓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 바람소리를 계속해서 느끼며 천천히 오래오래 걷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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