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드린 것 같습니다. 메타에서 필요하신 대부분의 기능들은 시야의 가장자리에 있는 메뉴에 있습니다. 이제 식님께서 자유롭게 메타를 알아가실 수 있도록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제가 필요하시면 이름만 불러주세요. 저는 식님 옆에 항상 대기 중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저에게는 말씀을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네, 감사.. 아니 고마워 수!”
수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식은 자신에게도 이런 넓은 정원에 대저택이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집의 이곳저곳을 빨리 확인해보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지만 최대한 현실에서 몸을 안 움직이며 집을 구석구석 돌아봤다. 유리로 되어있는 식의 집은 조금 신기한 구석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문 뒤의 공간은 아무리 보아도 셀보다 작아 보이는데 문을 열면 널찍한 방이 나타났다. 심지어 화장실은 문만 있었다. 믿기지 않는지 식은 문 바깥쪽과 문 안쪽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이러는 내내 식은 셀의 라운지체어에서 발을 휘젓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일어나서 집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소파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자 아까 수가 말했던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이 이미 현실에서도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기능들이 모두 있었다. 연락처는 현실과 연동되어서 식의 가족부터 친구들의 연락처가 모두 있었다. 연락처의 옆에는 메타에 접속해 있는지 여부도 초록색 동그라미로 표시되어있었다. 몇몇의 친구가 온라인으로 표시되어있었다.
지도 메뉴도 있었다. 지도를 누르자 식이 알고 있던 서울이 나타났다. 메타의 모든 곳은 웹사이트가 그렇듯 지리적으로 연결되어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현실에서 익숙하던 서울을 감성적인 이유로 재현해놓은 것이었다. M-서울은 시각화할 수는 없지만 실제 서울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식은 식의 집이 어디쯤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지도에 없었다. 대신 홈 메뉴가 밑에 있었다. 그리고 그 홈 메뉴를 누르니 링크를 공유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곧 식의 집으로 통하는 주소였다. 식이 새로운 메뉴에 손을 가져다 댈 때마다 도움말이 튀어나와 알 수 있었다.
허브 메뉴도 있었는데, 메타의 거의 모든 것들과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현실로 치면 광장, 쇼핑몰, 터미널과 같은 곳이었다. 허브는 현실에서 기존에 비슷한 웹서비스를 운영하던 ‘커넥스트’라는 회사가 만든 플랫폼이었다. 정부에서 M-서울을 건설한다고 했을 때 플랫폼 기업으로 참여했다. 초기에 다른 여러 기업들이 함께 운영하기는 했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은 것은 세련되고, 매끄러운 ‘커넥스트’의 서비스였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년간 이미 비슷한 서비스로 독점 중이었다. M-서울 건설 이야기가 돌기 몇 년 전부터 이미 메타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식도 메타에 들어오기 전부터 ‘커넥스트’ 이용자였다. 이미 여러 메뉴가 익숙해서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은 현실에서 사용하던 것처럼 쇼핑 메뉴를 눌러보았다. 놀랍게도 집 거실에 옷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물론 구매하기 전까지 식의 옷은 아니었지만 집 거실에서 입어보고 구매하면 바로 식의 옷이 되는 것이었다.
허브에는 광장처럼 모여서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는 라운지라는 곳도 있었다. 식은 궁금함에 들어가 보았다.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집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주변의 소리도 점점 작아지다가 다시 점점 커졌다. 축제를 하는 현장에 온 것처럼 떠들썩하고 음악소리도 들렸다. 식은 메타에 온 내내 혼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메타에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서울 안에 이렇게 넓은 잔디밭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넓었다. 중간에는 커다란 스테이지도 있었다. 누군가 공연을 하는데 식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식은 당연히 메타로 이주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겠거니 했다. 저 한 편에는 사람들이 수영하고 있는 호수가 있었다. 식이 서있는 주변으로는 음식을 나눠주는 천막이 늘어서 있었다. 식은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하는 중에 음식 냄새에 끌려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따라 걸었다.
식의 주위로 걸어가는 사람들이나 천막 아래서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까지 모두 핼러윈 파티에 온 것처럼 떠들썩하게 꾸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식은 처음에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면이 아니라 진짜 얼굴이 동물처럼 생기고 요정처럼 생기기도 했다.
“저기요! 거기!”
식은 큰 목소리에 돌아봤다.
“저요?”
식이 자신을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물어보았다. 레이스 달린 앞치마를 한 붉은 곰 모습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드시고 가세요. 무료예요 무료!”
식은 무료라는 말에 솔깃했다. 돈을 주고라도 하나 사 먹을 생각이 있었는데 무료라고 하니 곧바로 붉은 곰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그 붉은 곰은 그릴 마크가 있는 핫도그를 들고 있었다.
“이걸 무료로 준다고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무료로 주시는 거예요?”
“아… 메타에는 처음이시구나. 여기 라운지에서는 어떤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대신 상업적인 활동만 금지되어 있답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도 되고, 저처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면 요리를 해서 나눠먹어도 좋아요. 어, 그런데 처음 메타에 오셨으면 캡슐에 계신 거예요?”
“아, 아니요 저는 셀이라는 곳에 있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아쉽게도 음식 맛을 보기는 힘들겠네요. 맛을 못 보더라도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아요! 그나저나 저는 우즈라고 해요.”
우즈가 악수를 청하며 커다란 오른쪽 앞발을 내밀었다. 식은 우즈가 악수를 하자고 손을 들어 올릴 때 흠칫 놀라며 움츠러들었다.
“미안해요. 허허”
“저는 식이라고 합니다. 핫도그 고마워요.”
악수를 한다기보다는 식이 우즈의 손가락 하나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우즈는 잡은 손을 신나게 흔들었다.
“그럼 저 좀 더 돌아보려고요. 여긴 재밌는 게 많아 보이네요.”
“그래요. 저어기 가면 존 레넌이 공연하고 있으니까 가봐요. 현실에서는 못 보는 거잖아요.”
“에? 존 레넌이요? 여기 존 레넌이 살아있다고요?”
“네, 뭐 실제로 존 레넌이 살아 돌아 올리는 없겠지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