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엽 Jan 10. 2022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가요?

“여기엔 저 말곤 아무도 없나요?”

“그럴 리가요.”


보이는 시야 안에 수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식은 셀처럼 메타라는 곳이 사람들마다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연식님의 개인 공간인 집이기 때문에 누구도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현실에서처럼 말이죠. 하지만 언제든 연식님이 원하실 때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현실에서 알고 지낸 친구와 M-서울의 현대 미술관에 가실 수 있습니다. 메타 안에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시다면 연식님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친구를 소개해드릴 수 있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하시던 즐거운 일들을 여기서도 모두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연식님은 셀에 계시기 때문에 메타에서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캡슐 안에서는 가능하죠. 연결장치가 신경으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헤드셋처럼 뇌에서 오는 신호를 받기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뇌로 신호를 보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지금도 이 집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는 것 같은데요?”


유리 집 안에서는 기분 좋은 나무 향기가 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로 셀 안의 환기장치가 향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드셋과 연동되어 그때그때 상황에 알맞은 냄새를 만들어냅니다.”

“그건 그렇고, 우선 연식님이 메타 사회에 적응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겁니다. 메타 안에서 사용하실 이름을 정하시면 됩니다. 현실에서는 타인이 연식님의 이름을 정해주 었을 겁니다. 메타는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직접 정합니다. 원하실 때는 언제든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저는 식이라고 할게요. 제 친구들은 저를 다 그렇게 부르거든요.”


우리가 최연식이라는 사람을 식이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식이라는 이름은 최연식이라는 사람의 아바타 이름이자, 아직 그가 현실에 발 담그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부터 연식님은 식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식님은 이제 메타에서 갓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메타에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없습니다. 겉모습으로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신이 선택할 뿐입니다. 동물의 몸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동물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는 것도 가능하죠. 물론 비용은 발생하겠지만 언제든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

“식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싶으신가요?”


수가 식에게 물어봤다. 식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종과 성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었다. 소파 위에 앉아있는 자신을 보아도 현실의 최연식이 입고 있는 옷까지 그대로였다. 식은 막연히 누구처럼 과 같이 타인의 어떤 생김새를 닮고 싶어 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되고 싶은 얼굴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생각이 복잡해졌다. 베껴그리기만 하다가 정작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새하얀 캔버스 앞에 멈춰버린 화가 같았다. 


“음… 그냥 매력적이고 잘생겼으면 좋겠어요.”

“현실에서 이성에게 매력적인 외모를 말씀하시는 거죠?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그렇지만 메타에서는 현실에서 매력적인 외모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시게 될 겁니다.”


수의 말이 끝나자 식의 몸과 얼굴이 달라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더 나은 버전의 식이 된 것 같은 외모였다. 물론, 현실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랬다. 식은 자신의 얼굴을 양쪽 손으로 더듬었다. 눈앞에 거울이 없어서 자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 골격이 바뀐 정도는 느껴졌다. 배를 더듬어 보자 울퉁불퉁한 근육도 느껴졌다. 옷을 들춰보자 복근이 선명하게 있었다. 부러워만 하던 근육질의 몸을 쉽게 가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 원하시는 외모를 가지게 되셨으니 제가 어울리실 만한 옷을 한벌 선물해드리겠습니다.”

“오 정말요? 감사합니다.”


식이 입고 있던 최연식의 옷이 새로운 옷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식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패션에 대해 문외한인 식이 보기에도 어딘가 괴기하고, 화려했다. 중세 귀족들이 입었을 법한 옷이었다. 현실에서는 입고 다니지 않을 만한 실험적인 옷으로 보였다. 식은 의아해하는 얼굴로 자신이 입고 있는 곳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하죠? 여기서 옷은 현실에서의 의복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다릅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옷을 입는 주된 이유가 보호와 체온 유지 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표현이라는 부가적인 목적이 있죠. 보호와 보온이라는 기능이 필요 없어졌으니 메타에서 옷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기표현입니다.”  


식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벗고 입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지퍼나 단추를 찾고 계시다면 없을 겁니다. 입고 벗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옷장에서 선택하시거나 해제하는 것만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식님이 입고 계신 옷은 명품 브랜드의 올해 가장 인기 많은 옷입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식은 끄덕이며 수긍했다. 다시 한번 보니 화려한 옷이 멋져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현실에서 연식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옷은 편하고 내구성이 좋은 것을 택해서 몇 벌만 돌아가면서 입었다. 식은 메타에서도 습관적으로 기능을 찾았다. 하지만 메타는 기능이라는 요소가 기능을 잃어버린 곳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여유도 한정된 자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