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정리하고 한숨 돌리자 식은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문득 물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지원센터에 메시지를 보냈다. 자동 응답에 의해 바로 답이 왔다.
식은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을 컵에 받았다. 물을 한입 들이켜면서 창문 화면에 있는 식사 주문 메뉴를 눌렀다. 이사한 날은 중국음식이라는 생각에 자장면을 시켰다. 몇 분 뒤 문 밖에 기척이 들리더니 냉장고에 음식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식은 자장면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문을 닫았다. 전자레인지는 자장면인 것을 인식하고 자동으로 4분 30초 동안 조리를 시작했다.
식은 조리되는 동안 벽에 접혀있는 테이블을 펴고 라운지체어의 각도를 조절했다.
자장면은 신선한 재료로 바로 한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보통의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맛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셀에 공급되는 음식은 가장 신선할 때의 식재료를 계산된 양과 시간을 정확히 맞춰서 조리한 후 급속 냉동하기 때문에 풍미나 식감이 결코 식당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 젓가락이 여기가 지하 8층의 1.9평 셀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플라스틱 접시는 젓가락 질을 할 때마다 면을 따라 테이블 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식은 접시와 식기류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은 자장면을 다 먹고 접시와 젓가락을 쓰레기통에 다 집어넣으며 환기 버튼을 눌렀다. 라운지체어를 다시 원래 각도로 눕히고 잠시 쉬려는데 포트에 헤드셋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식이 기다리고 있던 물건이었다. 식은 얼른 포트 안의 박스를 꺼내서 열어보았다. 식은 스키 고글처럼 생긴 헤드셋을 착용했다. 새까맣게 어둡던 눈앞이 이내 밝아졌다. 아까 그 유리로 되어있던 지원센터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창문 밖 주위로 아까 전 식이 걸어왔던 숲이 보였다. 건물의 구조는 똑같지만 카운터도, 걸어 다니던 몇몇의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의 집처럼 주방이 있었다. 집 안에는 식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식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보이는 각도에 따라 남자라고 할 수도, 여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식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자라고 생각했다.
“최연식 님, 메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최연식 님이 메타에 적응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비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를 ‘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지금 최연식 님이 착용하시고 계신 헤드셋은 연식님의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감지합니다. 현실의 최연식 님이 팔을 움직이면 지금 제 앞에 있는 최연식 님의 아바타도 팔을 움직입니다. 말, 얼굴 표정 등 최연식 님의 분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 움직이면 여기저기 부딪히겠죠? 그래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신호를 보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라운지체어에 편하게 앉아 계신 상태로 아바타만 움직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한번 움직여 볼게요.”
유리 집의 소파에 앉아있던 아바타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식은 자신이 셀의 라운지체어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앉았다. 그러자 아바타도 앉았다. 식은 현실과 메타에서 둘 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처음이라 쉽지는 않을 거예요. 당연한 겁니다. 메타에서 방금 태어나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
수는 미소 지으면서 마치 양쪽 세계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메타에서는 걸을 일은 많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집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설명이 끝나고 집안에서 하실 수 있는 몇 가지 적응 훈련 프로그램을 알려드릴게요. ”
“메타에서 갓 태어나셨으니 메타와 M-서울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필요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우선 메타라는 공간은 현실을 본 따 만든 가상세계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한정된 자원과 공간에서 점점 늘어나는 인구에 대한 대안으로 생긴 곳입니다. 메타는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구의 환경보전에도 도움이 됩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과 자원이 최소한이 되기 때문이죠. “
“지금 계신 공간은 메타에서 연식님의 집입니다. 모두가 현실에서 이런 집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마 굉장한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하겠죠? 저기 보이는 커다란 숲도 연식님의 정원입니다. 메타에서는 모두가 이런 집과 정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식은 이 공간이 자신의 집이었으면 했었던 마음을 꿰뚫어 봤다고 느꼈다. 믿기지가 않았다. 영화에 나올 법한 백만장자의 집이 자신의 것이라니. 사방이 유리지만 보이는 곳이 전부 식의 공간이니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현실에서 식을 항상 괴롭히던 공간에 대한 문제가 한순간에 해소되는 듯 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밖으로 보이는 숲은 아까 보았던 현실의 공원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집 뒤편으로 호수가 있었다. 그 위에 비친 하늘은 청명했다. 식은 바로 몇 분 전 그리고 지금도 좁디좁은 셀 안에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다. 식이 셀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한 순간이었다. 식이 현실에서 표정을 드러내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실의 식에겐 여유도 한정된 자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