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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Jan 26. 2022

8 지구

식이 안내받고 도착한 곳은 권한이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직 이름이 없어 8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끝이 없는 지평선이 이어진 황량한 곳이었다. 우주 어딘가에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이런 곳이 꼭 하나쯤 있을 것이라고 식은 상상했다. 둘러보아도 살아 있는 생명체 하나 없는 것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반가워, 키네라고 해.”

자신을 네라고 소개하며 무뚝뚝하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얼굴 바로 아래까지 비늘로 덮인 파충류 피부를 하고 있었다. 넓고 각진 턱이 식의 눈에 들어왔다.


“식이라고 해, 반가워.”  

식은 악수를 하며 만약 현실이었다면 손이 거칠고 묵직한 느낌일 거라고 상상했다.


“우린 앞으로 여기서 파트너로 일하게 될 거야.”

 “간단해. 여기에 버그가 여기저기 있는데 우리가 사냥해서 보내면 보낸 수에 비례해서 메타 코인을 받는 거야. 적게 잡으면 덜 받고 많이 잡으면 더 받는 거지. 아주 공평하지?”

“ 나는 이 일을 하기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됐어. 메타에 온지는 더 오래됐고. 프로필 보니까 사냥을 꽤 잘하나 보던데? 그렇다면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사냥하는 거랑 꽤 비슷해. 더 쉬울 수도 있고. 이 놈들이 숨고 도망 다녀서 애먹기는 하지만 말이야.”

식은 키네가 말하는 이 놈들이 어떤 동물일까 생각했다. 화성처럼 생겼으니까 평범한 동물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도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우리가 사냥을 하는데 어떻게 버그가 사라진다는 거야?”

“좋은 질문이야. 우리가 버그를 죽여서 위치를 보내면 곧 회사에서 나와서 시신을 데려가. 그리고 해부해서 원인을 찾은 다음 코드를 고치는 거지. 나도 데려간 이후에는 듣기만 했지 잘 몰라. 나한텐 알려주지도 않고. 난 뭐 돈만 받으면 되니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자, 더 궁금한 게 많겠지만, 하면서 차차 알아가면 되는 거고 일단 가자.”


키네는 번쩍하고 저 멀리로 이동했다. 식도 선에게 배운 대로 번쩍하고 키네를 따라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는데 뭘 찾으라고 하는지 식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키네는 길게 뻗은 날카로운 눈으로 12시 방향부터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4시쯤에서 멈추었다. 식을 돌아보며 끄덕이며 신호를 한번 주고는 번쩍 4시 방향으로 사라졌다. 식도 뒤쳐지다가는 놓치고 말겠다는 생각에 키네가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키네의 손가락이 100미터쯤 앞의 둔덕을 가리키고 있었다. 식이 보자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버그를 찾은 것 같았다. 인간처럼 팔다리가 길고 두발로 서있었다. 식이 알던 외계인이 맞는 것 같았다. 키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식에게 한번 쏴보라는 손짓을 했다. 키네는 버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모든 움직임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했다.

식은 조심스럽게 장전하고, 버그를 향해 총을 올렸다. 숨을 멈추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가져다 댔다. 탕!

바로 옆 바위에 가려 빗맞았는지 버그가 식과 키네 쪽을 바라보더니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네는 총을 쏜 식보다도 먼저 빗맞음을 알아채고 버그 쪽으로 번쩍하고 이동했다. 탕! 곧바로 총소리가 들렸다. 식은 키네을 방향으로 이동했다.


“후.. 하마터면 놓칠뻔했어. 잘한다더니 처음이라 긴장했나 봐. 하하하”

키네는 머리에 총에 맞아 즉사한 버그를 한 발로 밟고는 식을 쳐다보며 이야기했다.

식은 피 흘려 쓰러져 있는 버그를 자세히 보았다. 사람이었다. 외계인이 아니고 머리에 총을 맞아 죽은 남자였다.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나체였다. 흡사 빨간 카펫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이거 사람이잖아? 사… 사람을 죽인 거야?”  

식은 구역질이 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렸다.


“하하하, 뭘 놀라고 그래. 생긴 것만 사람이야. “

키네는 얼굴 표정이 굳어진 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진정시켰다.


“버그는 제각기 다른 모습이야. 오늘은 사람이지? 내일은 코끼리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모레는 갓난아기일 수도 있어.”

“식이라고 했나? 잘 알아둬 여기 8 지구에는 아직 아무런 생명체도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설계하기를 그렇게 했어. 그런데 설계에 어떤 틈이 생겨서 이런 생명체가 생겨나는 거지. 이런 버그를 그냥 두면 나중에 사람들이 여기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게돼. 그러면 진짜 문제가 심각해지지. 누가 사람이고 누가 버그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더 이상 겉모습으로 인간인지 판단할 수 없잖아?”

좀 전에 키네가 어깨를 툭툭 치며 진정시킨 것보다 키네의 말이 식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식은 키네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착각한 것이 미안해졌다. 다행히 키네는 식의 이런 마음을 알 정도로 예리한 편은 아니었다. 키네는 버그를 죽이는 것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갓난아기가 나온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단번에 죽일 수 있었다.


“자 다음 놈은 네가 한번 잡아봐. 기억해. 네가 죽이는 건 사람이 아니야”


Photo by Juli Kosolapo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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