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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Aug 26. 2024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

나는 무려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 출신이다. 거창한 이름을 설명해 보겠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울 북부에 드림랜드라는 놀이동산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꿈동산(드림랜드) 유치원에 다녔다. 그때 유치원 지하에 작은 수영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수영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내가 지금 수영선수가 안되어 있는 걸 보면 소질은 없었나 보다. 그래도 나는 꽤 재미있게 수영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낮에는 수영 수업시간에 가끔 보던 수영선생님이 저녁때 우리 집으로 데리러 왔다. 단체 과외처럼 우리 형, 누나, 사촌형들까지 해서 6명 정도가 같이 주 3회 정도 수영을 했다. 다른 친구들은 뭍에서 놀고 있을 시간에 나는 물에한테서 논덕에 유치원 수영단인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어린이 스카우트처럼 돈 내면 들어갈 수 있었다.)

큰고모의 두 아들인 사촌형들이 원래 꿈동산 유치원 출신인데 동시에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 단원이기도 했다. 나랑은 나이차이가 2-3살 정도 나서 같이 다닌기간은 거의 없지만 내가 유치원 새내기 때 본 형들은 스포츠단복을 입고 꽤 늠름한 모습이었다. 노란색 트레이닝 셋업에 옆에 초록색 스트라이프가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이라고 쓰여있었는데 그때부터 수영이 멋져 보여 엄마한테 나도 하겠다고 졸랐던 것 같기도 하다.

여자 수영선생님은 우리 엄마보다도 어깨가 넓고 키도 컸다. 선생님이 무섭게 소리 지르면 수영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티브이 광고에서 소리 지르다가 접시가 깨지는 것처럼 수영장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보통은 해맑게 웃으면서 넓은 품으로 나를 질식할 정도로 안아주었다.

그렇게 어린이 스포츠단 선수가 되어서 하는 훈련에 수영의 비중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원래 엘리트 선수들을 보면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던가 유연성, 균형감각뿐만 아니라 멘털 트레이닝도 많다. 우리도 물속에서 숨 오래 참기 대결, 선생님이 물속에 던진 바둑알 더 많이 찾기 대결을 주로 했다.

선생님은 바둑알을 한 손 가득 쥐더니 낚시꾼이 떡밥을 던지는 것처럼 수영장에 흩뿌렸다. 나와 형들, 누나는 물안경을 쓰고는 멋지게(지금 보면 안 멋질 것 같다) 다이빙해서 바닥에 있는 검은색 바둑알을 재빨리 하나씩 모았다. 물고기가 된 것처럼 바닥을 휩쓸고 다녔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삐리릭 하고 울렸다. 물속을 해 집고 다니던 물고기들은 비로소 다시 인간 어린이로 바뀌어서 손에 쥔 바둑돌의 개수를 비교하며 탄식했다. 아! 아까 그거 내가 주으려던 건데라며 누군가 아쉬움을 표현했다. 나는 승부욕은 별로 없었다. 사실 이기는 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형들처럼 멋진 어린이 스포츠단이 되어 훈련을 받는다는 자부심으로 충분했다. 다시 말하자면, 형들하고 같이 노는 것이 좋았다.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에 입단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접배평자(접영, 배영, 평형, 자유형을 줄이는 수영 전문용어)를 마스터하고 대회에 나갔다. 다른 유치원 형들이 모여서(나는 유치원을 1년 먼저 들어가서 다 형들이었다) 접배평자로 대회를 했다. 처음 나가보는 대회라 그런지 출발선에 서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엄마랑 큰고모가 같이 왔는데 출발선에는 나 혼자였다. 웅성이던 수영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물안경을 고쳐 썼다. 적막함을 뚫고 삐리릭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배운 대로 멋지게 다이빙했는데 배로 철썩하며 뛰는 바람에 배가 아팠다. 그래도 아픔을 참고 수영을 했다. 접배평자 4번을 돌면 되는 경기였다. 어떻게 돌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3등이라고 가족들이 아쉬워하던 것이 기억난다. 전직 스포츠단원인 초등학생 사촌형들이 아쉽다며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20년이 넘게 지났고 중간에 수영을 한 적은 거의 없지만 누군가가 수영할 줄 아느냐고 물어오면 꿈동산 어린이 스포츠단 출신이라며 넌지시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수영에 대해 귀찮게 물어보지 않는다. 아니, 그 이후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가 철인 3종 경기를 나가겠다 꿈을 꾸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배로 철썩하는 멋진 다이빙과 참가선수 5명 중 3등으로 입상한 접배평자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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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엽

여행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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