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 셀로 이주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메일을 받으면서였다.
메일을 읽어볼 것도 없이 발신자를 보고 식은 어떤 메일인지 직감했다. 이 메일은 식이 만 30세 이상이며, 서울시에 거주하고, 혼자 사는, 특별 관리 대상임을 알려주었다. 그나마도 직장이 없는 경우는 자격미달이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식은 오전에 받은 메일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식의 생일은 꽤 늦은 편이라 대부분의 독신자이며 서울시민인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미 셀로 이주했다. 셀로 이주하지 않은 경우는 다양했다.
생일이 아직 안되어서, 결혼해서, 이혼했지만 아이가 있고 정부 양육이 아닌 직접 양육을 택해서. 이외에도 특이한 이유로 들어가지 않는 친구도 있었는데, 셀은 독신자를 메타에 사는 노예로 만들려는 방법이다라는 것이었다.
식도 마지막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마다 RIR(Rent Income Ratio, 월소득 대비 주거비)는 꾸준히 올라서 올해 기준으로 서울은 70%를 넘겼다. 이제 서울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부자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식은 다른 친구 2명과 서울 외곽의 소형 아파트를 살았다. 다른 두 명중 한 명은 결혼하고, 한 명은 셀로 옮겨가면서 식은 아파트를 혼자 쓰게 되었다. 몇 년간 같이 산 친구들의 배려였지만 올해 안에는 정리하기로 이야기한 터였다.
식의 부모님이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면 그곳 또한 대안이 될 수 있었겠지만 식은 서울 출신이 아니었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과 함께, 셀로 옮겨가는 대안을 고려하고는 있었다. 이 날 아침 메일을 받았고 이때까지 새로운 집을 구하지 못하자 셀 청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식에게 주어진 것은 청약권이지 입주권이 아니었으므로 원한다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식은 퇴근 후 서울 외곽의 소형 아파트로 돌아와 청약을 신청했다.
수년 전 셀 시범사업 초기에 서울시는 윤리적인 문제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도시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독신자들을 지하에 가두려는 것 아니냐. 창문조차 없고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닭장에 가둬놓고 메타에서 노예처럼 부리려는 것 아니냐. 등의 독신자의 인권문제.
독신자들의 정자와 난자를 인공 수정하는 정책은 종교 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있었다. 한때 전국에 반대 집회가 불길처럼 번졌다. 몇몇 지도자들은 단식투쟁도 불사하며 신의 뜻을 지켰다.
하지만 서울시의 변명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셀 밖에서 거주하고 있는 독신자들은 열악하고 100년 이상된 노후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시의 인구 밀집도가 세계로 봐도 최상단에 위치하고, 이러한 이유로 주거비가 가파르게 올랐다는 것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서울시민의 60% 이상을 메타로 이주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40%에 해당하는 1인 가구의 이주가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1인 가구의 활동량이 다른 가구와 비교했을 때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수성향의 독신자들은 어차피 혼자 살면서 방에만 있을 텐데 교도소 독방에 들어가라는 말이냐며 반발하며 시위했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의 과감한 결단과 예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머지않아 사그라들었다.
‘우리가 낳은 아기’라는 이름의 정부 인공 출산 정책은 사실 반대 측에서도 대안이 없었다. 수 십여 년 전 출산율이 0에 수렴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사라지는 위기에서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정책이었다. 몇몇 종교단체에서 대안 없이 급진적인 반대 시위를 하자. 오히려 반대하는 측이 더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좋으니 유전자라도 달라는 것이었다. 기증받은 정자와 난자를 선별해서 무작위로 인공수정을 했다. 이후 인공자궁인 미니 캡슐로 옮겨지는데 앞서 언급한 캡슐을 만든 회사의 초기 제품이었다. 여기서 10개월보다 짧은 6개월이 지나 정부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인공 출산이라는 방법으로 사망률과 연동해서 출산율을 조절하는 ‘정확한’ 인구조절이 가능해졌다. 이후 민간의 위탁기관으로 옮겨져서 아이들은 자라게 될 것이었다. 이 기업은 우리가 낳은 아기 출신 아이들이 모두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자란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