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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Jan 01. 2022

만약 단 하나의 물건만 가져갈 수 있다면?

셀에 관련된 정책이 지지받는다는 것은 청약의 경쟁률이 증명했다. 실제로 경쟁률이 20대 1에 가까워 질만큼 인기였다. 식은 자신은 어떤 것에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식은 30번째 생일이 지나고 한 달 뒤 셀에 입주할 수 있다는 메일을 받고 처음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식보다 먼저 셀에 들어간 친구들에게도 전화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직장에서 출퇴근 시간이 30분 더 걸리는 점, 과연 메타라는 곳이 어떨지 모르지만 창문 없는 지하에 2평도 되지 않는 곳에 살게 될 것이라는 점, 수년 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 등등 걱정되는 점도 없던 것은 아니다.


전화한 친구 중 한 명은 걱정 말라며 일단 들어오면 두 번 다시 셀 밖의 삶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식을 안심시켰다. 그 친구는 메타에 직장까지 구한 후로 셀 밖에 나가는 일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현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일부 가족들이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뿐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는 나갈 일도, 나가고 싶지도 않다는 신기한 말을 전했다. 셀 밖의 식이 볼 때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식은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접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것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신중한 식의 성향도 한몫했다. 식은 대체로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가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을 때 시도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청약의 경우 평소의 식으로서는 꽤나 도전적인 일이었지만, 여러 상황을 보았을 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이번 경우였다.


식은 셀에 입주하게 되었다.

식은 11페이지나 되는 입주 안내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정자 기증 신청 부분만 제외하면 여느 입주 안내서와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식은 협력병원에 정자 기증 신청을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한 달 뒤로 이사 신청을 했다.


며칠 뒤 식의 주소로 박스 하나가 배달되었다. 그 박스에는 ‘셀-1-서울 입주자 물품 운반용’이라고 적혀있었다. 수령과 함께 받은 메시지에는 되도록이면 박스 크기에 맞춰서 이삿짐을 줄여달라는 말이었다. 그 이상의 소지품이 있으면 생활이 불편해진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식은 한눈에 보기에도 박스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두 평도 되지 않는 셀의 크기로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짐을 정리할 때가 오자 그동안 자신이 소유한 물품이 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작은 박스 안에는 옷만 몇 벌 넣어도 가득 차버렸다. 결국은 옷도 가져오지 말라는 말인가. 식은 생각했다. 안내서 뒤편에 쓰여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입주자가 한두 벌 만의 실내복만으로도 불편함 없이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식은 그날 밤, 가진 모든 물건을  효용과 애착 사분면에 나누기로 했다. 사분면 안에서 물건들은 쓸모도 있고 애착도 있는 물건, 쓸모는 있지만 애착은 없는 물건, 쓸모는 없지만 애착은 있는 물건 마지막으로 쓸모도 없고 애착도 없는 물건, 이렇게 네 분류였다. 쓸모도 없고 애착도 없는 물건은 팔거나 버릴 물건이었다. 쓸모도 있고 애착도 있는 물건은 꼭 가져가야 했지만 그런 물건은 신기하게 단하나도 없었다. 결국, 쓸모 있는 물건과 애착 있는 물건만 남았다. 식은 쓸모 있는 물건들 먼저 중요도 순으로 박스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속옷, 양말, 세면도구, 박스가 거의 가득 차자 식은 애착 있는 물건을 단 하나만 챙기기로 했다.


애착이 있는 물건에는 중요도를 가리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찍은 사진, 지금의 자신을 형성한 책, 주고받은 편지 등 중에 식은 선인장 화분을 골랐다. 이유인즉슨, 메타로 옮길 수 있는 물건은 굳이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메타의 사진 함에도 부모님과 찍은 사진은 있을 것이고, 책도 얼마든 다시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아파트에 사는 동안 키운 선인장은 메타로 옮길 수 없었다. 또, 햇빛 없는 지하에서 피폐해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선인장까지 박스 안에 조심히 담아서 박스를 봉했다. 셀로 이사  준비는 거의 끝난 셈이었다.


다음  식은 오후에 직장에 이야기하고 정자 기증을 위해 셀에서 지정한 병원으로 향했다. 식은  번도 병원에서 정자 채취 과정을 경험해  적이 없어 약간은 궁금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간호사는 식을 세면대가 달려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은은한 조명의 방에서는 기분 좋은 라벤더 향기가 났다. 한가운데에 있는 소파에는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소파 위에는 VR 헤드셋이 있었다. 한쪽에는 정액 채취 용기와 채취기가 준비되어있었다. 간호사는 자신이 나간 뒤에 먼저 손과 몸을 깨끗이 씻고, 준비가 되면 소파에 앉아서 채취기 뒤에 용기를 끼우고 몸에 착용하라고 안내했다. 헤드셋을 사용하면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식은 간호사가 나간  헤드셋을 먼저 착용해보았다. 헤드셋을 착용하자. 나체의 매력적인 이성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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