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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Nov 17. 2023

피봇팅은 노는데도 필요하다

*피봇팅: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롭게 방향 전환

 국립현대미술관은 총 4개 장소(서울, 과천, 덕수궁 및 청주)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우리 가족은 접근성이 가장 좋은 서울관을 자주 간다. 2013년도에 개관한 서울관은 위치도 좋은 데다 주차까지 편리해 특별히 갈 곳 없을 때 그냥 동네 마실 가듯 주말에 가볍게 간다. 후루룩 전시관을 훑고 난 후 북촌 골목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서울 공예 박물관 근처까지 이동해 서울 여행하는 기분을 누리곤 한다. 근데 왜 굳이 현대미술관을 가는 걸까? 생각해 봤지만 그림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다거나 혹은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특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위치도 좋고, 주차도 편리하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계속 가다 보니 알게 된 건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5월 혹은 9월이 정말 매력적이다. 특정 기간 동안만 2층 외부로 연결되는 테라스를 오픈하는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차 한잔 마시면서 햇볕을 쬐고 있으면 서울 시내 한가운데 이렇게 평온한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생각보다 자주 가다 보니 계절과 주변 환경 그리고 주위 즐길 거리 등 외에도 현대미술관이 가진 본연의 가치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현대미술관이라는 이름답게 거의 대부분 현대 미술을 전시한다. 간혹 이건희 컬렉션 등의 작품이 전시되면 그림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봤을 때 이건 그림이구나, 아 좋네 이런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다. 하나 대부분은 "이거 뭐지?" 혹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든 거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당혹을 넘어 아무 생각 없게 만들어 버리는 작품이 상당수였다. 주위를 보면 하나 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귀에 오디오를 꼽고 설명을 들으며 지긋이 작품을 응시하는 이들이 수두룩 한데 내게는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외에도 주변 환경을 즐기기도 했거니와 모든 작품이 그렇게 난해했던 건 아니었던지라 보통 5-6관에 걸친 여러 전시를 둘러보며 나름 재미를 느끼고 북촌 투어를 즐기곤 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일반적인 감상을 즐기고 있던 중 하루는 1층에 있는 '미술책방'에 들렀다. 보통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지금의 테라로사(*커피전문점) 쪽을 통해 들어오고, 또 나가기에 사실상 정문 쪽으로 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정문 쪽에 자리한 '미술책방'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내 눈에도 잘 띄지 않아 한 번도 간 적이 없던 곳이었다.

 기억은 도대체가 믿을 수 없는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그날 전시가 내게 인상 깊게 남았던 것 같다. 뭔가 좀 더 알고 싶고, 자료도 보고 싶고, 생각도 하고 싶던 찰나에 그곳을 찾은 것이다. 거기는 각종 전시도록을 포함해 국립현대미술관 출판물과 국내외 예술서적이 큐레이션 돼 있었다. 뭐랄까, 평소에 가던 큰 책방과는 달랐다. 미술작품에 특화된 책이 큐레이션 된 독립서점 느낌이랄까. 근데 생각보다 책도 꽤 있었다. 눈이 동그래지며 좀 전에 봤던 전시와 관련된 도록도 살펴봤다. 서점에서는 눈에도 띄지 않던 예술책이 그 작은 공간 안에 내 눈앞에 들이밀어져 있으니 약간 들뜬 기분으로 꺼내고 또 꺼내 살짝씩 읽어 봤다. 너무 재밌었다. 도록도 사고 책도 샀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니 옆에 위치한 '미술가게'로 이동해 딸이 갖고 싶던 기념품도 시원하게 사줬다. 도록과 책을 통해 겨우 쥐꼬리만큼 더 알게 된 것뿐이겠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계기가 돼 다음번에 왔을 때 드디어 '멤버십'까지 등록하기에 이른다. 사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시 멤버십 종류가 2가지였는데 저렴한 버전의 1년 멤버십 가격이 5만 원 밖에 하지 않았다. 하나 동반자 1인은 무료였으며 몇 가지 추가 혜택을 고려해 보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미술관의 멤버십에 가입할 생각을 정말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계속 오다 보니, 보다 보니, 듣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지난주에 와이프와 딸을 공평 도시유적 전시관에 데려다주고 혼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들렀다. 그중 'MMCA(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 년 여행기'의 판소리와 *기다유 공연 전시를 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적어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생각도 못했던 연출을 보게 돼 여러 생각이 막 떠올랐다. 현대미술관을 꾸준히 접하다 보니 이런 게 있구나 하는 정도를 넘어 이젠, 이 공간에 전시되는 콘텐트가 내 놀이의 한 부분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꾸준히 접했던 것뿐인데, 세상에는 이런 것도 있고, 생각보다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기다유: 일본 전통 악기(마치 긴 기타 같은)의 반주에 맞춰 다른 이가 이야기와 노래를 이어가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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