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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보미 쬬이마마 Oct 11. 2022

우리가 진짜 잃어버린 것

치매인이 갖는 고립감과 불안감에 대하여

"핸드폰 분실하셨나요?"


너무나 반가운 전화였기에 듣자마자 목이 메었다. 세 사람이 돌아가며 무려 네 시간 동안을 찾아 헤매도 나오지 않았으니 깨끗하게 승복해야겠다고 생각한 후였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새로 개통하러 가기까지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오면 반드시 받아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 번째 전화는 수도검침에 대한 전화였다. 기다리던 전화는 아니었으나 최대한 친절하게 받았다. 그 간절함이 하늘에 가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전화를 끊고 5분이나 지났을까. 엄마의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주는 고운 목소리가 마침내 도착했다.









<치매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의 마지막 페이지를 막 읽은 후였다.

처음에는 흥미로웠다가 중간에는 좀 어려웠고 마지막에서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가 아까워진 그런 책이었다. 특히 모든 인간의 "연결"됨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치매 노인이 가지는 고립감과 불안감은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연결"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그들을 어떻게 돌봄 하는지에 따라 다른 치매의 여정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치매인이 갖는 고립감과 불안감은 과연 무엇일까?


치매인의 가족이 느끼는 고립감과 불안감도 벅찬데... 책을 읽으면서는 그 단어가 주는 무게에 눌렸다. 사회적 기술이 상실되고 경계성을 상실하여 맘껏 자유로울 거라 생각한 엄마였는데... 책을 읽으며 그토록 부정했던 감정들이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 헤매며 온몸으로 느껴졌다.



깊이 들어가자면 이러하다. 식구들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잠시 나와 까맣게 어두워진 숲길을 걸었다. 도토리를 주우며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이니 숲 속 중에서도 길이 아닌 곳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인적이 없고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한 숲의 안쪽을 걸으며 순간적으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곳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저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번쩍 스쳤다.


그렇게 한 번 공포감을 대면하고 나니 처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을 찾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지만, 공포감을 느낀 그곳에 더 이상 머무를 수는 없던 것이었다. 숲 속의 깊은 안쪽 길이 아닌 정식으로 길이 나 있는 가장자리만를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찾는 것인지 그냥 집에만 무사히 도착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어졌다.


거대했던 공포감은 좀 사그라들었지만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핸드폰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이상 숲의 가장자리 길도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함을 느꼈다.


항상 걷던 길이 낯설어졌다. 이곳은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숲이 아니라 내 소중한 것을 삼켜버린 괴물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간절히 찾는 것에 대해 응답해주지 않는 숲을 지나며 이윽고 진짜 잃어버린 것이 무언인지마저 상실해버렸다. 그저 어둡고 낯선 느낌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치매인이 느끼는 고립감과 불안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는데 정작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 말이다. 그가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은 분명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텐데. 그것이 바로 사람과의 "연결됨"이라면,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는 끝끝내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가 느낄 고립감과 불안은 누구라도 가늠할 수 없고, 공감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어둡고 스산해진 길 위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쳤다. 핸드폰을 찾지 못해 속상한 마음과 산비탈에서 미끄러질 뻔했던 아찔한 상황까지 버무려지니 그만 눈물이 났다. 생각은 온통 잃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에 머물렀다. 그러다 진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엄마가 치매라는 병을 통해 잃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 해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일까, 엄마가 지금 가장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마음은 복잡해져만 갔다.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온몸이 저릿하다. 그것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의 가득찬 빛으로, 친절하게 웃음 짓는 당신의 사람들도, 핏덩이에서 당신 손으로 직접 길러 이제는 다섯 살이 된 어여쁜 손녀딸조차도 가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둠보다도 지독한 서슬 퍼런 침묵이 이런걸까.

 


잃어버린 것이 엄마가 아님깨달음으로 번뜩였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추위와 두려움에 몸이 얼어있을 엄마를 위해 욕조에는 따뜻한 물을 받아야지, 핸드폰은 다시 사면되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참 다행이다 말씀드려야지, 평소보다 더 많이 걸었을 엄마의 퉁퉁부은 다리와 발을 부드럽게 주물러 드려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고, 돌려주신 천사님께도 작은 감사의 선물을 드렸다. 물론 엄마하고도 맘껏 축하의 시간을 즐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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