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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보미 쬬이마마 Aug 17. 2022

따뜻한 찬물 한 바가지

무지한이 조각조각 찢기어 나부낀다. 친절한 파괴의 시간이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유나였다. 엄마의 손녀딸이 아닌, 나의 딸 조이가 아닌, 오늘 처음 만난 손녀의 동네 친구. 아이는 스스럼없이 엄마의 품에 안겼다. 엄마의 두꺼운 손이 품 안으로 달려드는 아이를 금세 품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끓고 있는 삼계탕을 두고 잠깐 산책을 나온 길이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 30분. 그 시간을 더하면 삼계탕은 뼈가 자동으로 발라질 정도로 푹 고아 삶아져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입추가 지나 선선해진 가을 저녁 바람도 만만했다. 무엇보다 음식이 완성될 동안 집 안에서 TV만 붙들고 있을 모습이 싫었다.


"조이야~ 조이야~ 같이 가자~"

저만치에서 아이를 알아보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종종 만나 함께 놀았던 친구였다. 뛰어오는 친구를 기다리니 친구엄마와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처럼 산책을 나왔다는 유나네와 함께 예상치 않게 동네 산책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산책이었는데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께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따로 걷자고 말할 재간이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함께 걷기를 청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이와 단둘이 나온 산책이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함께 나온 엄마가 문제였다.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엄마가 말실수를 하게 될까 봐, 내가 말하기도 전에 유나엄마가 엄마의 병세를 짐작할까 봐, 나를 치매 걸린 엄마 딸이라고 하찮게 생각할까 봐.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짙게 드리워진 나의 어둔 그림자가 점점 더 번지는 것 같았다. 걷는 건지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건지 모를 산책이 시작되었다. 다섯 살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엄마는 저만치 앞서 걷기 시작했다.




입추가 지나니 확실히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다는 얘기, 이번 폭우에 피해 입은 가족들은 없냐는 얘기들이 가볍게 오고 갔다. 아이들은 산책길에 보이는 나비 그림,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 이 길로 산책을 자주 다닌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별 이야기 같지는 않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 아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어른들의 대화에 제법 어린이답게 참여하고 싶어 하는 다섯 살 꼬마들의 모습이 의젓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린 다섯 살이든 여든 살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때로 이야기는 들어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기도 한다. 들어주는 사람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앞서가는 엄마를 불러 함께 걷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엄마는 누구네 집 담장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었다. 말릴 틈 없이 잽싸게 나뭇가지 두 개를 사정없이 꺾어버린 것이다. 누가 봐도 잘 관리된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잔뜩 달린 나뭇가지였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 일이란 말이가. 말려도 말려도 멈춰지지 않는 엄마의 이 행동. 하필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은 때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벌어지다니.


등허리에 식은땀은 흘렀다 빠르게 증발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나무를 잘 관리한 집주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니었다. 혹여나 겪게 될 수도 있는 엄마의 수치 때문도 아니었다.



언젠가 들었던 누군가의 고백과 같을 것이다. 여느 엄마들처럼 고급스럽게 차려입기를 바랐던 엄마였다고 했다. 고상한 패션으로 친구들의 환심까지 샀으면 하는 치기 어린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하굣길, 그날 그의 엄마는 빠글 머리에 다 늘어진 티셔츠, 일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길거리 위에서 엄마는 그에게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조금 전 함께 산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남의 집 나뭇가지를 꺾어대는 무지한이 나에게도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몇 년이 지나 울며 고백을 했지만 나의 고백은 중학생의 그것과는 같을 수 없다. 이로써 진정한 무지한은 도움이 필요해진 피붙이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체면이 더 중요한 나 자신이 되었다.





그 시간 엄마의 나뭇가지는 아이들의 손을 향해갔다. 역시나 그 이유뿐이었다. 먼저 나의 눈치를 슬쩍 살핀 아이가 '싫어요'라며 차가웠다. 아이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거절당한 나뭇가지가 땅에 거침없이 버려졌다. 애꿎은 나뭇가지에만 눈이 갔다. 방금 전까지 나무에 달려 생생한 빛을 내던 나뭇잎들이 금세 온기를 잃은 게 아깝고 안타까웠나. 그러고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었다. 무심히 걷는 손녀딸을 지그시 바라보는 할머니를.


단 한 번의 웃음을 위한 수고였을 것이다. 그저 손녀딸이 예쁘다고, 이 할머니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안타깝고 아까운 마음이 나뭇가지에서 엄마에게로 쏟아지듯 흘렀다. 엄마의 수고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무심히 버려졌을까. 따스한 온기는 여성이기에 엄마이기에 왜 당연한 것이라고만 여겼을까. 공든 탑은 무너진다.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손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 누구보다 안타까워 미치겠는 것은  엄마 자신일 것이다.  


  


이제 남은 나뭇가지는 하나, 친구 유나를 향했다.

혹시 벌레는 없나, 거미줄이 묻어있는 것은 아닌가 초조하게 살폈다. 아이가 소리 지르며 달아날 모습만이 상상되었다. 상처 입을 엄마의 나뭇가지를 대신 받아 들어야지 하고 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이윽고 유나의 손에 나뭇가지가 들렸다.

아이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할머니의 품에 와락 잠겨 버린 것이다. 서로는 조금의 주저함 없이 뜨겁게 끓어 안아 품고 토닥였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에게만 찰나의 민망함이 불쑥 찾아왔다.



나를 단번에 깨운 것은 따뜻한 찬물 한 바가지 같은 아이의 한 마디였다.


"할머니 사랑해요"


 한마디였다. 신줏단지 마냥 소중히 챙기려던 것이 바닥에 덜컹 떨어졌다. 이내 산산이 부서졌다. 조각조각 찢기어 나부꼈다.

파괴자가 다정하게 찾아오는 것은 누구의 계획일까. 생기를 찾은 이야기만이 흐르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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