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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 숲 May 04. 2021

멜린다와 빌 게이츠의 이혼선언

엄마는 홀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서 나에게 둘도 없는 롤모델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삶의 이런저런 도전들이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한 가지 자신 없는 것을 꼽으라면 결혼이었다.   


아빠는 내가 여섯 살 때 암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고 엄마는 그 후로 일에 전념하며 홀로 나를 키우는데 모든 힘을 쏟으셨다. 그래서 나는 남녀가 꾸려나가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그리기가 쉽지 않고 조금은 추상적이게 느껴졌다.


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미디어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드라마 내용들, 아내를 배신하는 남편, 미지근해 마지못해 사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더더욱 자신감을 잃어갔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내 손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나는 관계에 서툴렀다. 나도 잘 이해하기 힘든 많은 감정들을 상대방에게는 더 수수께끼 같은 나만의 언어들로 표현했고, 희생은 마치 지는 것처럼 느껴져 그렇게도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 끝에 문제는 물론 그들에게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도 무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일 년 동안 연애를 쉬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해에 본 다큐멘터리가 '인사이드 빌 게이츠'였다. 그 필름 속 멜린다와 빌 게이츠는 내가 너무나도 갈망하고 찾아 헤매었던 부부로서의 최고 롤모델이었다. 빌은 멜린다를 "truly equal partner" 라 칭했고 자신이 부족한 감성적인 면을 채워주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멜린다는 남편을 지지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뚜렷이 하였고 빌이 세상을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인도했다. 인생의 말년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둘이 한 팀이 되어 세상에 관심받지 못해 죽어가는 나라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밝은 삶을 선물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나에게 있어선 희망이었다. 


아, 저게 결혼이구나.


그랬던 그들이 오늘 이혼선언을 하였다.


나는 전 직장에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도시로 출장 가는 일이 잦았다. 답도 없는 길치인 나는 구글 맵에 무한 의존하여 운전해 목적지를 향해달려가고 있었는데 어느 한 산 골목에서 시그널을 잃어 순간 놀라 차를 무작정 세워야만 했다. 멜린다와 빌의 이혼 뉴스를 읽은 오늘이 딱 그 날 같았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난 후, 서로의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다른 길을 가기를 선택한 부부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지 못하고 자라온 사람들에겐 우러러볼 곳이 이 세상엔 많이 없다. 


나는 누구를 보고 배워야 할까. 


언제 생길지 모르는 나의 아이에게 결혼은 아름다운 것이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난 될 수 있을까? 


또다시 자신이 없어지는 날이다. 


사진출처: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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