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마늘 장아찌
그 많은 김치와 장아찌와 된장 간장을 담그던 엄마와 할머니 생각
풋마늘은 딱 요즘에만 먹을 수 있는 채소이다. 줄기에 마늘이 맺히기 전, 파릇파릇 연하고 알싸한 풋마늘이 마트에 짠 하고 등장한다.파릇한 봄날에 길어야 이주 정도만 살 수 있는 한정판 신상 채소 되시겠다. 살짝 데치거나 아예 생으로 초고추장에 무쳐먹으면 정신이 번쩍 나고, 새콤달콤 장아찌로 담그면 삼겹살의 단짝이다. 밥에 물말아서 풋마늘 장아찌 척 얹어 먹으면, 두말 할 것 없이 게임 끝.
계절마다 부족한 솜씨지만 이런 저장음식을 담근다. 봄에는 곰취장아찌, 풋마늘 장아찌, 오이김치, 가을에는 사과 콩포트(쨈보다 덜 달고 과육이 살아있는 설탕조림), 겨울에는 생강청, 무우장아찌 등. 나의 장아찌 사랑은 그 옛날 외갓집에서 먹은 할머니의 단감장아찌에서 시작되었다. 방학마다 버스를 갈아타고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쯤 가다가 낯익은 산모퉁이를 돌면, 마을에서 떨어져서 얌전히 산 밑에 앉아 있는 기와집이 보였다. 문 앞에는 벌써 버스 소리를 듣고는 덩치가 당시 나만했던 개 메리가 나와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꺄아~~ 할머니 ~~ 소리지르며 문에 뛰어든 우리는, 안방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절을 올리고는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배고프다고 조르는 것이 도착한 첫 날의 풍경이었다.
가마솥에 지은 밥에 계란 후라이, 각종 김치, 애호박 또는 가지볶음, 밭에서 바로 뜯어온 상추 깻잎 풋고추, 그리고 항아리에서 바로 꺼내 갓 무친 감장아찌, 머위 장아찌, 무우짠지 등등. 뚝딱 차려주신 그 밥상은 풍성하고 정갈했다. 입맛 까다로운 언니는 머위장아찌에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의 원픽은 단연 감장아찌였는데 그 달콤아삭한 맛에 두 그릇은 기본이었다. 감장아찌는 뒷마당에 서있는 백년쯤 묵은 감나무에 열린 단감을 가을에 따서 고추장 항아리에 묻어놓고 다음해 여름에 꺼내어 잘게 썰어 갖은 양념에 무쳐먹는, 외할머니의 시그니처 메뉴였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여름 방학마다 가서 먹던 감장아찌를 그 후로 나는 먹어보지 못했다.
사는 게 팍팍하고 마음이 허허로울 때 나는 뭔가 음식을 만들며 풀었던 거 같다. 가장 힘들었던 이십대 후반에 내가 제일 많이 해먹었던 음식은 육개장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번거롭다고 잘안해먹게 되는 그 음식을 거의 매달 곰솥가득 끓여 놓고 몇날며칠을 먹었다. 마음 답답할 때는 한밤중에 멸치를 볶거나 깍두기를 담는 일도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나면 단시간에 내 눈 앞에 구체적 결과물이 나오는 뿌듯함이 좋았다. 어쩌다 내가 한 음식에서 옅게나마 엄마와 외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면 까닭모를 애잔함도 느껴졌다. 엄마와 할머니도 그 많은 김치와 장아찌와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그시며 삶을 견디신 걸까, 뒤늦게 헤아린다.
얼마 전 읽은 불교책에서 '성불을 하려면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한발짝도 움직이면 안된다'는 구절을 읽었다. 깨달음을 찾는답시고 절에 들어가는등 현실을 회피해선 안된다는 가르침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는,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행복이 있다고 믿으며 산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왜 없었을까. 당신 몸뚱이보다 훨씬 큰 항아리에 된장 간장을 담고, 김장김치를 담그며 삶을 채웠던 그녀들이야말로 서 있는 자리에서 두 발 꿋꿋이 딛고 버티며 주변을 풍성하게 만들어낸 부처가 아닐까.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풋마늘에서부처까지오늘도삼천포
#장아찌정식식당이어딘가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