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2017)
To. 훨훨 날아가고픈 레이디 버드들에게
이십 대 초반, 누군가와 함께 공항에 가는 일이 참 싫었습니다. 당시 저는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살고 있었지만 방학이나 휴가 때는 한국으로 돌아왔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본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엄마와 함께 김포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어색한 식사 시간 후 비행기 시간이 다가올 즘, 복잡한 감정을 안고 보안 검색대 스크린도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본에 놀러 온 엄마를 배웅할 때도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쉬움, 외로움, 슬픔,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약이 섞인 감정을 무심한 대화와 표정 속에 숨겨야 했습니다. 강한 척은 하고 싶지만 감정 숨기기에 약한 저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과 공항 가는 일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영화 <레이디 버드>의 후반부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대학에 합격해 뉴욕으로 떠나는 딸과 그녀를 배웅해 주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온 가족들. 이어지는 어색한 인사와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에 대한 후회, 그리고 눈물.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헤어짐의 순간만큼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나 봅니다. 이 장면 말고도 영화를 보며 주인공에게 제 지난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겨운 도시에 대한 애증, 집을 떠나 독립하겠노라는 다짐, 하지만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날아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제 스무 살이 떠오르며 레이디 버드를 응원하게 됐습니다.
<레이디 버드> (그레타 거윅, 2017)
일본 생활에 지쳐 있던 저를 구원해 준 영화가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2015)입니다. 아일랜드를 떠나 뉴욕으로 이민 온 ‘에일리스’ (시얼샤 로넌 扮)가 자기 손으로 새로운 고향, 사랑, 직업을 일궈나가는 그녀의 성장 드라마를 담은 영화를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본인의 선택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두 눈을 반짝이는 에일리스와 달리, 하루하루를 죽은 듯이 보내고 있었던 제 모습이 초라해졌기 때문이죠. 에일리스의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와,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마다 파란 문을 박차고 나오는 용기를 보며 영화관에 앉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저의 인생 영화가 되어준 시얼샤 로넌이 또다시 독립과 성장에 관한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니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감독은 영화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2012) 속에서 뉴욕 대도시를 배경으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 ‘프란시스 하’를 연기한 ‘그레타 거윅’이라고 하니 두 여성이 그려낸 질풍노도의 독립기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맨토에서 부모님, 오빠 부부와 함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살림과 낡은 집, 야근에 지쳐 신경이 예민한 엄마, 엄격한 교칙, 재미없는 일상과 허무한 연애…. 크리스틴은 이 모든 상황이 싫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자기 집은 국기가 걸려있는 크고 멋진 파란색 집이라고 거짓말까지 칩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은 그녀를 아무것도 없는 도시에 가둬 놓는 구속처럼 느껴지죠. 유일한 돌파구는 대학입니다.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도 버리고 자기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기를 원합니다.
열여덟, 열아홉의 저 역시 완전히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고 제가 원하는 대로 듣고 보고 느끼길 원했습니다. 주위에서 시키는 대로 살았던 지난날을 잊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한 여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본 교토로 날아갔습니다. 2014년 3월 24일 간사이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마신 공기는 눅눅하지만 시렸습니다. 그렇게 주민등록증만 나오면 어른이 됐다고 착각했었던 이십 대 초반의 독립생활의 막이 올라갔습니다.
나고 자란 둥지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립에도 계단이 존재했습니다. 신체적 독립, 경제적 독립, 그리고 가장 마지막 단계인 정신적 독립까지 밟고 올라가야 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레이디 버드와 이십 대 초반의 저는 독립을 단지 몸과 돈의 문제로만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알바를 해서 다른 도시로 떠날 수 있는 경제적 여력만 만들어 두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었죠. 돈만 있다면 혼자서 다 해낼 수 있다고 착각했던 시절의 제 모습과 쏙 빼닮은 레이디 버드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습니다. 부모님과 싸운 뒤 알아서 먹고살겠다고, 본인을 키우는 데 든 돈이 얼마냐며, 나중에 돈 벌어서 갚겠다고 소리치는 레이디 버드의 모습은 아기 새가 날갯짓 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엄마가 레이디 버드에게 돈이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나 아직 그 말을 이해하기엔 레이디 버드가 몸소 부딪혀보지 않은 인생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습니다.
자기만의 방에 나 혼자 숨어 사는 것이 독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오 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기껏 도망쳐 왔지만 도망친 곳에서도 다시 새로운 곳을 동경했으며, ‘내가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까’라고 수 없이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저를 가두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그리워하고 울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옛 도시가 그리워지는 건 추방당한 후에야 비로소 그곳이 낙원이었음을 깨닫기 때문일까요? (헤르만 헤세의 말을 빌림) 핸드폰도 울리지 않는 원룸에 앉아 있으면 왁자지껄한 가족 모임, 상다리 부러질 듯한 집밥, 매일 같이 만났던 친구들, 등하굣길 보던 창밖 풍경, 집 주변 가게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꿈을 이뤄 다른 도시로 떠난 레이디 버드를 기다리는 것들도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낡고 좁은 집을 벗어나겠노라 다짐했지만 옛날 자기 방보다 작은 집에 짐을 풀게 되죠. 재밌는 일이 없을까 밖을 돌아다니지만 낯설기만 한 곳에서 고향과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발견합니다. 그저 그런 술집에 들어가서 그저 그런 남자를 만나지만 남는 건 생애 최악의 숙취뿐. 고향에서의 삶과 다른 게 있다면 더 춥고 외롭고 모든 걸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제야 내가 살던 도시가 애틋해 보이고 가족 생각이 나도 늦었습니다. 훨훨 날아가겠다던 꿈을 이룬 뒤이기 때문이죠. 슬프지만 몸의 독립을 위한 싸움이 끝났다면 이제는 홀로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위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새로운 둥지를 찾은 레이디 버드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과 하루하루 버틸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이 있었으면 합니다.
싫음, 미움, 애증. 이 모든 감정은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태어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레이디 버드가 집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엄마와 매일 싸우는 이유도 모두 사랑과 관심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떠나고 싶은 마음도, 말싸움할 이유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칭하며 언젠가 훨훨 날아가겠노라 말하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도시와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레이디 버드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장면에서도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 “넌 분명 새크라멘토를 사랑해.”
-레이디 버드: “제가요?”
-선생님: “글에서 새크라멘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더라.”
-레이디 버드: “그냥 있는 대로 썼어요.”
-선생님: “근데 그 속에 사랑이 느껴져.”
-레이디 버드: “네, 뭐 관심은 갖고 있죠.”
-선생님: “그 둘이 같은 것 아닐까? 사랑과 관심.”
새로 정착한 둥지가 춥고 외롭더라도 고향에는 사랑과 관심이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장소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레이디 버드가 힘들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곳, 가서 마음을 충천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경제적, 정신적 독립으로 가는 길도 외롭지 않겠지요. 분명 고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복잡한 감정에 마음이 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짧고 재회의 기쁨은 커다랗습니다. 다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고향에서의 일들과 그곳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From.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