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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Jul 02.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방랑을 택한다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1984)

To. 자유를 꿈꾸지만 방랑자가 되는 건 두려운 이들에게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본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선 자본주의 세상의 일부가 되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완벽하게 내려놓을 용기가 없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정도는 참아야 해’라고 생각하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유를 꿈꾸는 주제에 안정적인 삶과 멋진 커리어를 원하는 겁쟁이이기 때문이죠.


 죽기 직전까지 일하고 죽지 않을 만큼의 돈을 받던 시절, 역대급 태풍 강타로 인해 집이며 직장이며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일터는 침수되고 직장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도 끊겨 어쩔 수 없이 강제 휴가를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3일 이상 쉬며 밤낮이 바뀌지 않은 생활과 일분일초에 예민해지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었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무기한 자유가 주어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이웃 동료들과 술 마시고 수다 떨고 포커 치고……. 그것마저 질린 뒤에는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1984) 


자유로운 방랑자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가 주어지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무렵에 꺼내 든 영화 한 편이 바로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1984)입니다. 짐 자무쉬 감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변두리에 살며 인생을 방랑하는 아웃사이더들입니다. 일정한 주거지 없는 여행객이나 이민자들이 대표적이죠.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외국인, 떠돌이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평범함의 틀을 깨고 자유분방한 삶을 삽니다.


 감독은 본래 시인을 꿈꿨다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의 주인공 ‘크눌프’는 짐 자무쉬 월드 속 캐릭터의 선조가 아닐까 싶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속세의 굴레를 벗어나 시골 마을을 방랑하고 시를 읊는 생활을 즐기다 죽음을 맞아 자연으로 돌아가는 크눌프의 인생이야 말로 짐 자무쉬가 원하던 시인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저 역시 수중에 든 것은 없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크눌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더군요.


걷고 달리고 또 걷고. 이하 이미지 출처 :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  1984)


 방랑을 예찬하는 감독이 만든 <천국보다 낯선>은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여행기를 로드 무비 형식으로 담아낸 영화입니다. 196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언더그라운드, 실험 형식의 장르. 비행 청소년, 빈민 등 미국의 어지러운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준다.) 자유로운 정신을 이어받아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날것으로 드러냅니다. 파라다이스를 찾아 이곳저곳 떠돌지만 결국엔 아무런 수확 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세 주인공의 방랑기는 아메리칸드림의 좌절을 단편적으로 보여줍니다.






윌리, 에바, 에디가 길 위에서 방황하는 이유


 영화는 총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부 <신세계> (The New World)는 뉴욕 빈민가에 사는 ‘윌리’와 헝가리에서 그를 찾아온 사촌 여동생 ‘에바’의 만남이 담겨있습니다. 제2부 <1년 후> (One Year Later)는 윌리와 친구 ‘에디’가 도박으로 돈을 따 에바를 만나러 클리블랜드로 떠나는 이야기와 에바를 만나 플로리다로 향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제3부 <천국> (Paradise)은 꿈의 땅 플로리다로 떠났지만 뿔뿔이 흩어지는 세 명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세 주인공은 현재 있는 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합니다. 역마살이 낀 떠돌이 주인공들은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클리블랜드로, 그리고 플로리다로 꿈을 찾아 떠납니다. 하지만 어느 곳도 그들이 꿈꾸는 것만큼 아름답고 친절하고 행복하진 않습니다. 들뜬 감정은 금방 가라앉고 또다시 지루하고 배고픈 현실이 찾아오죠. 에바가 무슨 생각으로 윌리네 집을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포부가 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고향을 떠나 막연한 아메리칸드림을 좇아온 게 아닐까요. 뭐,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미국 땅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지만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입니다. 윌리는 도박으로 돈을 벌고 에바는 핫도그 가게에서 일하며 고모의 잔소리도 견뎌야 합니다. ‘플로리다는 뭔가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길을 나서지만 그 어디를 가도 상상했던 천국보다 낯설기만 합니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왔지만 현실은 통조림 고기만 먹는 나날의 반복이다.
클리블랜드로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에바는 지루하기만 하다.
긴 여정 끝에 꿈의 땅 플로리다에 도착했지만 무얼 해야 하나 모른다.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고 금방 질릴 바에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짐 자무쉬의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인생이란 끊임없이 길 위에 서서 방황하고, 옆 사람과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시답잖은 일을 하고, 새로운 터전이 질릴 때쯤에 또 다른 방랑을 떠나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머물렀던 곳에서의 신선했던 시간이 지나면 그 장소를 떠나야 한다. 삶은 길 위의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일정하게 고정된 시간과 공간은 오히려 유동적인 삶을 구속하는, 이른바, 삶의 굴레다. 이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항상 끝없이 이동하는 여행길이야말로 삶을 대하는 최상의 방책일 수 있다. 여행은 특히 가진 것 없는 부평초 아웃사이더들에게는 더더욱 최선책이다. ‘인생 여정!’, 삶은 방랑이다.

『영화로 읽는 시네필 인문학』  김성희 지음, 인간과문학사, 2016, 95pp.






그래도 가끔은 변주가 필요하다


 저도 이들처럼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곳 말고 꿈과 희망이 넘쳐흐르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곳에 갈수만 있다면 새로 태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막상 새 출발을 하면 금세 매너리즘에 빠져 꿈의 도시도 그저 그런 곳이 됩니다. 멀리서 보면 한 없이 멋져 보여도 내가 그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별로인 곳으로 변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꿈꾸던 곳에 간다고 해서 내가 가진 문제나 나쁜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습니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어느새 슬금슬금 기어 나와 예전의 나로 돌려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세 사람처럼 다른 세계를 꿈꿉니다. 새로운 시작이 꼭 좋은 일만 가져오리란 보장은 없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은 것 같기 때문이죠. 숨 돌리면서 배운 새로운 습관이 일상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하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가 기념품 가게에서 산 모자 하나 때문에 비행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선택에 대단한 이유는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우발적인 선택이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모텔로 돌아온 에바가 다음에 어디로 갈진 모릅니다. 하지만 다음 목적지는 잠시나마 천국이 될 것이고, 거기에 지치면 또다시 다른 천국을 찾아 떠날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떠나기 위해 많은 계획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향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하고,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대를 버릴수록 얻는 게 많아지는 것처럼요. <천국보다 낯선>은 총 68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고 숏과 숏 사이는 블랙아웃으로 연결됩니다. 신과 신을 조악하게 이어 붙인듯한 편집은 일상 속 반복되는 대화, 불행과 행운, 우연이 가져오는 결과를 의식의 흐름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은 장면들은 긴 호흡으로 아무런 개입 없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합니다. 영화에는 개연성도 심도 있는 플롯도 없지만 우발적인 행동과 운명의 장난이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개입과 우연의 일치가 그리는 이야기는 마치 영화가 아닌, 그들의 인생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감독의 여타 작품이 그러하듯이, <천국보다 낯선>도 사람 사는 얘기, 인생 흘러가는 얘기입니다. 뭔가 대단한 전개를 기대하고 보면 지루할 수 있죠. 하지만 바로 이런 평범하고 지루함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고 감독은 전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커피 향, 저녁에는 담배 냄새에 찌들고 답을 모르겠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몸을 움직여 방랑하는 것이라고.






 꼭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저는 퇴사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고 긴 고민의 끝에 결정을 내린 거죠. 무슨 무모한 결정이냐, 너무 겉멋들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며 후회한 적도 많지만 배우고 얻은 것도 많고, 전 보다 나아진 점도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발길 향하는 대로 가보려고 합니다.



방랑길에서 - 크눌프를 생각하며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오고,

밤이 오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위에

차가운 달이 남몰래 웃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의 손을 잡고 쉬게 되겠지.


슬퍼하지 마라. 곧 때가 오고,

때가 오면 쉴 테니.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

환한 길가에 서 있을지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고 가겠지.


-헤르만 헤세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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