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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Aug 12. 2021

대단한 도서관

저의 놀이터는 도서관입니다

저는 공공시설 중 도서관을 가장 좋아합니다. 시민들에게 무료로 이만한 혜택을 주는 곳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의 집 주위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서관이 있을 겁니다. 도서관의 회원 등록을 하면 누구나 도서 대출뿐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의 구입 신청까지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요청받은 책을 구입하게 되면 신청자에게 문자로 통보까지 해줍니다. 도서관은 책을 읽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냉난방과 조명은 완벽하고 책상과 의자는 쾌적합니다.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고, 자료는 쉽게 검색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도 너무 쉽고 편리합니다. 반납일이 다가오면 문자로  통보까지 해줍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정말 대단합니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 책은 먼 추억 같은 존재입니다. 정보나 지식이 필요한 경우 구글이나 유튜브에 키워드를 치고 엔터키만 누르면 해답이 주르륵 뜨니까 백과사전을 뒤지거나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정보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가며 얻는 정보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한 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인터넷 검색의 장점은 물론 빠르고 쉬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요약이 잘되어 있어서 빠른 시간에 개략적인 지식을 얻기에는 정말 효과적입니다. 책은 일단 많은 시간을 요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데도 약간의 기술과 숙달이 필요합니다. 차이점은 정보의 폭과 깊이입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정보는 진실 여부를 가리기가 어려운 게 문제입니다.

     

제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한 책을 한 권 썼는데 집 바로 옆에 도서관이 없었다면 그 시간에 책을 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이 저에게는 놀이터이자 일터이군요. 책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도서관의 셰익스피어 관련 책이 집중된 서가와 그 옆의 책상은 제가 단골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작업환경은 어디에도 없을 듯합니다.


책을 한 권 출판한 이후에 가끔 강연을 하게 되는데, 도서관이나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오는 강연 요청을 저는 가장 좋아합니다. 강연마다 청중의 성격이나 반응이 상당히 다릅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로 인사부에서 주도한 사내 교양강좌 형태인데, 사실 전부가 순수한 자발적 참여자는 아닙니다. 심지어는 낮잠을 자러 들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강사 입장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팔짱을 끼고 잠을 청하며 곧 반수면 상태에 돌입하는 참석자들을 보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일정 시간마다 웃음을 유발해서 잠든 사람들을 깨우기도 하지만 잠시 깨어났던 사람들은 5분 이내에 다시 잠에 빠지곤 합니다. 제가 도서관의 강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참석자들이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이라 호기심이 많고 양방향 대화가 활발하기 때문입니다. 조는 사람은 물론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강의가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읽기로 일주일에 한 번씩 4주 연속으로 하는 강연이었습니다. 첫 시간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 위주의 개론에 해당하는 강의였고 그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한 권씩 3 편의 작품을 함께 읽어보고 토론하는 것으로 계획했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 함께 읽어보고 싶은 작품과 순서를 정하고 일주일간 각자가 읽어 와서 다음 시간에 참석하기로 정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해당 작품을 다 읽고 오셔서 약간 놀랐습니다. 참석자의 2/3는 공주님들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주부를 공주라고 부르더군요. 강연자의 질문에도 참석자 모두가 개성을 발산하며 답을 하시고 질문의 수준도 높아서 즐거운 4주를 보냈습니다. 강연에 들어와서 잠을 자는 석박사 소지자들보다는 이분들이 진정한 교양인입니다.

                       

도서관을 무척 사랑했던 사람으로 클레오파트라와 보르헤스가 떠오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대개 선정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매우 지적인 통치자였습니다. 당시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알렉산드리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고 책을 수집하는 것에 대단한 열성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대단한 독서가여서 과장을 보탰겠지만 도서관에 있는 책을 거의 다 봤다는 얘기까지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주변국의 언어를 모두 공부해서 통역이 필요 없었다고 하니까 짐작이 갑니다. 그녀는 나중에 독사를 이용해 시녀들과 함께 자살을 하게 되는데 가장 고통 없이 죽는 방법으로 뱀의 독을 이용하는 것까지 미리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둘 다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으로 유명한데, 둘 다 도서관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점령하러 들어왔을 때 난리 와중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 불타버립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 어떤 영화에서 도서관이 불타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사실혼 관계였습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 빠져서 로마에 돌아가지 않고 이집트에 머물게 되는데 책을 좋아하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당시 두 번째로 컸던 베르가모의 도서관을 약탈해서 바칩니다. 베르가모의 왕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부러워서 그에 버금가는 도서관을 건립하고 파피루스를 이집트에서 수입하며 열심히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이를 알고 파피루스의 반출을 금지하자, 베르가모는 가죽 등 다른 재료를 이용해 책을 만들었는데, 장서가 20만 권 정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안토니우스가 이 책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옮긴 겁니다. 이 책들 역시 7세기경 아랍의 침공으로 불타버리고 말았으니 알렉산드리아는 책에게는 비운의 장소였나 봅니다. 안토니우스가 엄청난 양의 책을 옮기기 위해 군사 작전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클레오파트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토니우스가 별 짓을 다 했구나 라는 것과 클레오파트라가 진짜 책을 좋아했구나 라는 것이지요. 이 책들이 남아 있었다면 이집트의 국력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 태어났고 도서관의 사서 일도 했고 아르헨티나의 국립 도서관장까지 지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도서관’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습니다. 보르헤스의 다음 말은 도서관에 대한 최고의 찬사입니다.   

  

“나는 낙원이 있다면 도서관 같은 것 아닐까 하고 늘 상상했다.”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다음 말을 보고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유일한 정보는 도서관의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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