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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Aug 23. 2021

책 읽을 시간이 없나요?

독서의 계기

하버드 대학교의 졸업장보다 독서습관이 더 소중하다고 빌 게이츠가 말했다지요. 시간을 일부러 내서 책을 읽으라고 말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나요. 사실 독서가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읽으려면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책을 놓아버립니다. 어떤 책들은 띄엄띄엄 읽거나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만, 또 어떤 책들은 끝까지 읽지 않으면 독서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독서가 습관이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학창 시절부터 여러 번 읽어보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했습니다. 책이 너무 두껍기도 하고 러시아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운 데다가 사람마다 별도의 애칭이 있어서 등장인물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완독에 성공한 것은  한참 후 어느 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다부지게 도전한 결과였습니다. 어떤 책들은 완독을 하려면 정말 단단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여러 번 실패했던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더군요. 술술 읽어 나가기에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시간이 좀 있었고 끝까지 읽는다는 결심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내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전에는 왜 이 책을 끝까지 못 읽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물들의 대화가 비현실적일 정도로 관념적이고 철학적이고 무엇보다도 말이 깁니다. 일상생활에서 두 사람이 보통 대화하면 번갈아 말을 하게 되고 한 사람이 1분 이상 길게 말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별로 없지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시간제한 없는 토론에 참가한 듯,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설을 하듯 각자의 말을 이어갑니다. 그것도 인간 존재와 자유의지, 선과 악, 종교 등 무거운 주제를 깊숙하게 다루면서 말이지요. 니체는 도스토옙스키를 ‘유일한 심리학자’라고 칭했다는데 과연 그렇습니다. 작가의 정수가 모두 들어있는 이 소설의 인간 심리 묘사는 압도적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선고까지 받고 시베리아 유형까지 겪은 극한의 경험까지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 그가 겪은 모든 고통과 고뇌가 전부 녹아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대를 음속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000 페이지의 진지한 소설을 읽으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개 고전 명작이라고 꼽히는 책들은 첫 부분을 극복하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가 중요합니다. 초반을 극복하면 스토리를 따라가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고 읽고 나면 깊은 울림과 여운이 가슴에 남게 되지요. 소설 속에 나왔던 수많은 명언 속에서 나의 인생에 영향을 줄만한 통찰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소설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선택된 일부 독자들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두툼한 고전소설을 읽고 나면 확실히 책의 두께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은 느낌이 듭니다.


책의 두께 얘기를 하다 보니 파올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생각납니다. 산티아고는 소년 목동인데 늘 책 한 권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는 읽던 책을 다 읽은 후, 다음에는 좀 더 두꺼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오래 읽을 수 있고 베개로도 두꺼운 책이 더 좋다는 거지요. 책 한 권의 소중함을 느껴보셨나요? 얀 마르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 Life of Pi>에서 주인공 파이는 인도의 16세 소년인데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난파를 당합니다. 이 소년은 구조되는 것 말고 다른 소망이 있다면 책 한 권이라고 말합니다. 아주 두껍고 자꾸 읽어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의미를 느끼게 하는 책을 원한다고 합니다.  대단한 16세 소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독서생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두꺼운 책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어졌습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그다음에 읽었습니다. 전부터 읽고 싶었던 고전들을 차례로 읽고 새로운 책을 계속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읽고 싶지만 아직 완독 하지 못한 책도 많습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언젠가 읽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해하거나 분량이 많지만 위대한 소설들로 알려져 있지요. 위대하다고 하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의 중독성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습관을 만들어 줍니다. 독서가 습관이 되면 읽는 대상이 점점 확장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책의 종류도 다양해집니다. 그전에 관심 없던 분야의 책도 가끔 읽을 마음이 생깁니다. 관심 분야가 확장되는 것과 함께 좋아하는 작가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다른 작가를 인용하거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나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은 무궁무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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