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 들어보는 질문들
20대 후반에 돌아온 캠퍼스에서는 수업을 따라가는 것에 온 신경을 몰두했다. 알바를 찾는 일을 아주 잠시 미뤄놓고 내가 학교에 적응하는걸 최우선으로 생활했다. 꽤나 내향적인 나는 사실 수업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내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빠른 캠퍼스 적응을 목표로 학교 곳곳을 의무적으로 탐험하고 다녔다. 운 좋게도 같은 학기에 학교를 시작한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져서 (내향적이 성향을 이겨내고 사귄 친구들) 비교적 덜 아웃사이드스럽게 캠퍼스 탐방을 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진 않은 캠퍼스였지만 조심스럽게 서로가 발을 맞춰 걷다 보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다를 떨 기회가 생겼다.
그때 가장 자주 어울리던 친구 리사는 누가 봐도 내향적인데 용기를 내 나에게 다가오는 것임이 느껴졌다. 같은 내향으로서 확신할 수 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땐 귀가 빨개지고 나에게 순수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물어보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내 친구. 그 친구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첫 데이트 같았다. 성별 외엔 딱히 같은 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우린 서로에게 불편하거나 무례하지 않을 것 같은 질문들로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져 갔다.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올 때까지 쭉 같은 동네에 살았던 리사에게 한국에서 미국 시골로 넘어온 나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물론 나도 아시안 친구라곤 자원봉사활동을 가서 알게 된 중국인 친구 한 명뿐이라는 백인 친구가 흥미로웠다. 개방적인 미국이라곤 하지만 어디부터가 오지랖인지 가늠이 안가 안전한 질문들만 던졌다.
리사는 무엇보다도 내가 가족이나 친구 한 명 없이 홀로 미국에 와 있는 걸 신기해했다. 본인은 한 번도 독립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부럽다 했다. 독립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얘기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 두 명의 동생이 있고 그중 한 명이 거의 열 살 차이가 난다는 내 얘기를 들은 리사는 내 인생 가장 획기적인 질문을 던졌다.
"너랑 너의 두 명의 동생은 부모님이 같아?" 내가 영어를 잘못 이해했나 싶어 "우리 부모님이 우리 셋 모두를 낳았냐고?"라고 재차 확인했다. 그동안 지켜왔던 선이 무색해지는 과감한 질문! 내가 당황한 티가 났는지 리사는 급하게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 의붓/이복동생인 경우도 많으니까!"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편하게 물어볼 질문도 아닌 거 같은데, 당황함이 가라앉자 오히려 내가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가족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부모님이 다 같은 동생들이야"라고 대답을 하고 나자 리사는 본인의 부모님은 자신이 두 살 때 이혼을 하셨다 했다. 잠깐 아차 싶었지만 금세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편해졌다.
엄마아빠의 이혼 후, 유치원 때 잠깐 엄마와 살았던 시간을 제외하곤 쭉 아빠와 살고 있다 했다. 외동아들인 아빠에게서 태어난 외동딸 리사를, 할머니는 끔찍이도 아끼며 물심양면으로 육아를 도와주셨다 했다. 은퇴를 하시자마자 아빠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셔 지금까지도 쭉 지내고 계신다 했다. 엄마랑도 자주 보냐는 질문에 리사는 "엄마가 할머니랑 살고 있어서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엄마를 봐"라고 대답했다. 엄마를 보러 가는 김에 할머니를 보는 게 아닌 할머니를 보러 가면 엄마가 있다는 말이 의아했다. 할머니댁이 가깝냐고 물어보니 같은 동네라 했다. 이혼은 했지만 부모님과 양가 할머니들까지 같은 동네에 산다니! 너무 부러웠다. "나도 할머니들이랑 같이 살고 싶다! 할머니가 최고야"라는 나의 감탄에 돌아온 리사의 대답은 지금까지도 너무 쇼킹하다. "우리 엄마의 엄마는 멀리 살아. 우리 엄마랑 같이 살고 있는 할머니는 우리 아빠의 엄마야"
뇌가 정지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K 막장 드라마 (예를 들면 사랑과 전쟁)에 익숙해진 내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엑스시어머니와 동거라니...?! 나의 놀램을 숨기지 못했던 까닭에 리사는 어쩌다 보니 엄마는 집이 필요했고 할머니는 집안일 및 개인적인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몇 년 전부터 두 분의 동거가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꽤나 개방적이라고 자부했는데, 정말이지 문화충격. 정작 엄마아빠의 사이는 좋지 않다고 말을 하는 리사의 눈에 내 표정이 어땠을지 눈에 선하다.
웃기게도 그때를 기점으로 리사의 아빠집과 할머니집을 여러 번 방문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와 친해졌다. 사랑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리사의 졸업식날 나의 꼬마가 벌써 이렇게 컸다는 게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리사의 아버지도, 본인이 입양아라 지구상 유일한 나의 전부는 리사밖에 없다는 리사의 어머니도, 본인의 방 한쪽면을 리사 사진으로 도배해 두신 할머니도, 그저 리사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평범한 가족이었다. 그날의 대화와 리사의 가족들과의 만남 이후, 어떤 질문과 코멘트를 들어도 조금 더 넓은 시야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삶은 끊임없는 내 세계의 확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