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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읽는구십년생 Nov 27. 2020

자식이 뭐길래

일상의 발견

대만족

아빠는 엄지를 치켜들고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생애 첫 대장암 검진을 마치고, 6개의 용종을 제거하고 나온 뒤였다. 급격히 왜소해져 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신경 쓰여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합 검진을 예약했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한 일이었는데, 아빠와 엄마는 몇 번이고 "딸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구에 본적을 두고 부산에서 청춘을 보낸 아빠는 세심하지는 않지만 책임감이 투철한 경상도 사나이 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사치로 생각했다. 처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해줄 수만 있다면 밤낮이 바뀌는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줄넘기 천 번을 거뜬히 뛰어내던 30대 아빠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기도 한다. 그 또한 밥벌이를 훌륭하게 해내기 위함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빠는 나이가 들수록 그마저의 운동에도 소홀해졌다. 하루에 한 갑씩 피워대는 담배도, 늘어나는 배 둘레도, 습관적인 야식으로 생긴 식도염에도 의도적으로 신경을 끄고 지냈다.


가족의 설득에도 아빠는 종합검진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식 이길 수 있는 부모 없다 했던가. 자식 된 위치를 이번 만은 제대로 써보겠다고 마음먹고 아빠를 서울로 끌고 오다시피 했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내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꾸역꾸역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아빠는 툴툴댔다. 수면 내시경을 받다가 눈을 뜨지 못한 후배 이야기를 꺼내며 겁에 질린 본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식처럼 생각했던 막내 삼촌의 이른 죽음을 지켜본 뒤 아빠는 겁이 더 많아졌다. 몇 번을 고비를 넘기고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더욱 건강에 자신을 잃은 듯 보였다.


다행히 큰 탈 없이 건강검진을 마치고 아빠는 급격히 활기를 되찾았다. 멈춰있던 아빠의 업무 전화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울려대기 시작했다. 아빠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서울은 확실히 다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산으로 내려가시기 전, 동생과 함께 한 가족 식사에서 다시 힘내서 일할 수 있겠다고 했다. 누가 뭐래도 내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들은 어쩌면 가족밖에 없을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쓸쓸하기도 했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아빠의 걱정거리인 내가 미워서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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