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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읽는구십년생 Dec 18. 2020

행복이 아닌 평온을 선택하고 알게 된 것

산책의 발견

최근 tvN <유퀴즈> '어떻게 살 것인가' 편에 출연하신 월호스님의 말씀을 듣고 정신이 번쩍 뜨였다.


불행의 근본 이유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
행복이 아닌 '안심(安心)'을 추구하라는 것.


내게 집착이 일어날 때면, 난 '행복'을 택하자고 다그쳤다. 내 마음과 몸이 힘들면, 집착하는 것을 소유한다 해도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고 되뇌이며 집착하려는 것과 거리를 두려했다. 하지만 자꾸 떠오르는 불편한 의문들이 가시질 않았다. 우선, 거리를 뒀을 때 난 행복한가?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성과를 냈을 때,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사랑을 받았을 때,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 난 행복했다. 행복에는 분명 높고 낮음이 있었고, 행복은 대부분 불행을 수반했다.


그럼 그 행복들은 언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잘해보려는 것이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자칫 과욕으로 비쳐져 타인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놀고 먹으며 살 수 없는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맘껏 쇼핑을 하고, 언제든 책임을 져버리고 멀리 떠나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슬프게도 인간관계에는 유효기간이 있었다. 삶은 늘 내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일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쫓아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안심'을 추구하는 일은 좀 달랐다. 무엇보다 평온해지는 일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쌉싸름한 겨울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둘레길을 걷는 일, 햇살을 받으며 요가를 하는 일, 고요함 속에 차를 마시는 일, 마음을 씻겨내듯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 감미로운 노래를 듣는 일,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환경에서 벗어나 고독을 택하는 일,  같은 건 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로소 주체적인 삶이 가능해진 느낌이 들었다.


늘 내게 큰 위안을 가져다주는 동네 산책길


안정감이 주는 잔잔한 행복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내게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땐 조금 덜 불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행복이 가시더라도, 내겐 온전한 일상이 남아 있을테니까. 그래서 오늘 밤도, 평온을 구하며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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