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극복 일상
트램을 타고 가는데 중년의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트램에 올라섰다.
그다지 특이할 할 것 없는 광경이라 별생각 없이 시선을 거두려는 찰나,
파란색의 민소매 (그렇다. 겨드랑이가 꽤나 깊게 파인 민소매다!) 티셔츠를 입고, 자리에 앉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어느 상남자의 자유 영혼 향기가 느껴졌다.
나의 시선을 그가 느끼지 않도록 살짝 고개를 돌려 그의 앞에 서있는 자전거를 보았다.
자전거 핸들 앞에 웬 나무 토막이 하나 걸려있다.
엥?
10년은 넘게 쓴 것 같은 자전거. 곳곳에 임시방편으로 고친듯한 자전거의 외관에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 곳에 시선이 꽂혔다.
자전거 바구니에 무심하게 넣어져있는 사과 몇 개와 그 옆에 주황색 장미꽃 꽃두송이. 이례적으로 더운 9월의 독일 날씨에 장미꽃도 지친 듯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미꽃.
이 모든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왜인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왜 장미꽃을 챙기신걸까?
누구에게 주려는 걸까? 아니면 누가 준 걸까?
우리 옆을 오가고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종종 그 사람들의 오늘 하루, 인생을 상상해 보곤 한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을 그들의 소중한 일상들.
가나안에 가서 자매님(기독교회이기 때문에 수녀님이 아니라 자매님이라고 부른다)을 만났다,
그리고 뜻밖의 선물 - 가나안에서 자란 토마토와 꽃을을 선물로 받았다.
젊은 나이에 너무 힘든 일은 겪었다며 위로해 주시며 아름다운 들꽃을 다발로 만들어 전해 주시는 자매님의 들꽃처럼 담백하지만 따뜻한 위로에 또 눈물을 흘려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예쁜 꽃과 맛있는 커피에 감사하며 감사일기를 쓰고,
글을 썼다.
그리고 이런 일상 사진이 있는 이유는, 유튜브를 위해 일상을 영상으로 열심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저녁에는 베니가 만든 맛있는 피자를 먹으며 저녁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느 저녁에는 한국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며 다음 편도 이어서 보고 싶어 하는 베니의 맑은 눈망울을 애써 못 본척하기도 해야 했다.
베니가 늦게 퇴근한 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한국 티비를 보면서 Fish and Chips에 하이볼을 원 없이 먹고 마시며 자유 부인 night을 즐겼다.
작년 이맘때 즈음만 해도 베니가 병원에 있어서 혼자 있는 집이 외롭고 힘들어 많이 울었는데,
홀로인 저녁 시간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이십 대 때 읽고 친구에게 추천해 주었다는 막스 뮐러의 책, 독일인의 사랑을 읽었다.
별 기대 없이. 아니, 조금의 기대도 없이 읽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책이다.
너무 좋아서 책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감격에 젖어 읽었던 문장과 내용들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려보았다.
이 감동이 가시기 전에 나중에 꼭 글로 책 리뷰를 남기려고 한다.
엄마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책 표지는 문득 어떤 모양이었을까, 누가 번역을 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내가 읽은 것은 차경아 번역 버전이었는데, 출판사가 똑같은 문예출판사임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이 오래된 출판사가 아직도 출판계에서 살아남아있음에, 그리고 훌륭한 번역가들과 함께 좋은 문학 작품들을 계속해서 출판해 주고 있음에 감사했다. 초판은 비싸서 못 사겠지만, 독일어 원문 책을 사겠다고 결심했다.
생각만 하고 하지 않고 있던 유튜브 채널을 새로 개설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76Al-z2l8Q
예전에 베니와 함께 요리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고 반응이 나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상 하나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는지, 그리고 수많은 유튜브 영상 중에서 내 채널이, 내 영상이 주목받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실행에 옮기지 않았었다.
그러다 문득 당연한 것 없는 소중한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지만 그래서 소중한 일상을 담아 영상을 올리기로 했다.
영상 찍기보다 글쓰기가 좋은 사람이라 얼마나 자주 올릴지, 오래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seuli
얼떨결에 브런치북도 새로 개설했다.
너무 많은 것을 또 욕심내서 한꺼번에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주저하기도 했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하기로 했다.
내 첫 책 제목처럼
눈 꼭 감고 그냥 그냥 시작
https://www.youtube.com/@dasseu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