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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pr 11. 2021

넌 어느 아파트 사니?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날씨가 화창했던 가을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넓은 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그 공원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기에 아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아내와 나는 쉬고 있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는 처음에는 혼자서 노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친구를 사귀어 함께 뛰어놀곤 한다. 그 허물없는 모습이 어쩌면 어린이들의 순수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 역시 어느 틈엔가 친구들을 사귀어 함께 뛰어 노느라 평소엔 그다지도 애타게 찾던 부모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이들은 해맑게 놀이터에서 뛰어놀았고, 우리 부부는 벤치에 앉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즐겁게 놀던 중 우리 부부 앞을 지나치는 딸과 한 여자 아이의 대화를 들었다.


- "넌 어느 아파트 살아?"

- 딸 : "나? 몰라."

- "난 OO아파트 살아."

- 딸(이해를 못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

- "그럼 넌 무슨 차 타?"

- 딸 : "아빠 차! 그런데 우리는 엄마도 차 있어."

- "......"


화창한 날씨 아래 동심 어린 놀이터와 어울리지 않는 대화는 잠시 우리 부부의 사고 회로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우리 부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 딸 : "아빠~심심해~"

- 아빠 : "친구랑 놀던 거 아니었어?"

- 딸 : "어 그랬는데 나랑 안 논데."

- 아빠 : "왜?"

- 딸 : "몰라~그냥 안 논데."


그러는 우리의 눈 앞에 아까 그 여자아이가 한 무리의 아들을 이끌고 놀고 있었다. 이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한 우리 부부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해를 시킬지 알 수가 없었고, 분노를 할 수도 그냥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가 어디 가서 딱히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 대한 어이없음과 상대방에 대한 한심함과 우리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뒤섞인 감정은 낯설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찝찝함을 뒤로 남긴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뉴스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눈 앞에 닥치자 우리 부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고작 8살짜리 아이들이 부모의 아파트와 차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에 경악함과 동시에 반대로 우리가 딸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건지 우리 스스로 헷갈렸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적당히 먹고 살만큼은 벌기에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았는데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에 뒤흔들렸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왠지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들은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들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어쩌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부부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아이들이 어디 가서 무시받지 않게 좋은 집과 차, 명품으로 환경을 꾸며 주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명확한 가치관과 자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전자처럼 부유한 환경을 꾸며주려다 뱁새 가랑이 찢어질 것을 생각하면 결국 한 가지 선택지 밖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또 쉬운 일은 아니기에 고민이 길어졌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 채 아이들을 풍파에 맡길 가능성이 제일 높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늦은 밤 답 없는 고민을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부모가 되면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우리보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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