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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Apr 11. 2021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너도 커서 꼭 너 닮은 자식을 낳아봐야 알지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크면서 아버지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꼈던 기억보다는 무섭고 엄했던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심적으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대부분 원망에 가까웠다.


20대 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또 달랐다. 여전히 아버지는 서먹하고 부정적인 이미지 였지만 어릴 적 느꼈던 것보다는 유한 느낌이 강했다. 아버지가 나이가 듦에 따라 변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진 영향이 컸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또 달랐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행동들을 보면서 내가 어릴 적 봤던 아버지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 그 행동의 이면과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오랜 시간 아버지에 대해 쌓아 왔던 원망 부정적인 감정들 지금에서야 알게 된 모습 간극이 컸던 탓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아버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것조차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듣게 되는 우리를 키울 때의 이야기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모가 아닌 한 명의 개개인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겪었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어쩌면 난 정말 아버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과 아버지의 행동과 의도 사이에는 많은 간극과 오해가 있었고 그것은 결국 서먹한 부자지간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아버지는 조금 일찍 돌아가신 그 날까지 자식들에게 서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닮은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느낄 테니 아마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반대로 언제나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어머니의 모습도 나이가 들수록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라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닌 내 필요에 의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식이란 존재는 참으로 배은망덕한 존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살면서 불효를 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주변에서도 버릇없다거나 부모 속을 썩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어쩌면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들이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희생과 노력을 몰라보고 그 뒷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렸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정말 핑계일 뿐임을 스스로 잘 안다. 그 어릴 때도 친구, 연인, 선생님 등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하고, 그 관계를 위해 노력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부모를 이해하려고 해보지 않았을까? 가부장적인 부모의 잘못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녀들의 무심함이 없어지진 않는 것 같다. 왜 옛 선조들이 효를 그렇게 강조하고 높게 평가했는지 알 것 같다. 효는 정말 쉬운 게 아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부모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할수록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부모로 보이느냐이다. 내 나름대로 좋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노력하지만, 그건 결국 나만의 기준일 뿐이고 실제로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애들이 어리니까 그럭저럭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커도 아이들이 부모를 냉정히 평가할 수 있게 될 텐데 진심으로 그때가 걱정된다. 행여나 우리 아이들이 나를 과거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듯이 한다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너도 커서 꼭 너 닮은 자식을 낳아봐라."


부모님들이 이런 말을 하면 예전엔 맨날 뭐 저리 뻔한 소리를 하냐 싶었지만, 이제는 그 말의 담긴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때 얼마큼 속이 상하셨고 힘드셨을지도 지금의 나에 비추어 느낄 수가 있다.


과거 내가 범한 우를 우리 아이들이 범하지 않도록

내가 좀 더 좋은 부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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