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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Oct 06. 2021

글을 쓰던 이유 4

내가 나일 수 있게

 군 복무기간 동안 꾸준히 쓴 일기는 마음의 정리 말고도 글쓰기 인생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글쓰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 것이다. 분명 이전에도 '창작'이란 이름의 행위는 했었지만 잿밥에 관심이 더 많던 시절이라 글 쓰는 과정 자체의 가치나 즐거움을 오롯이 느끼진 못했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면서 글 쓰는 행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글쓰기에 집중을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창작의 욕구가 생겨났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시작과 동시에 벽에 부딪혔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써본 적 밖에 없다 보니 어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게 글을 쓴다는 것이 감조차 오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입 속에 말은 맴돌기만 할 뿐, A4용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쓸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절히 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식도 쌓고 글을 쓰는 연습도 할 겸 난생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독후감' 쓰기였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책을 좀 읽고 독후감을 쓰다 보면 지식도 늘고 글 쓰는 훈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독후감 꽤나 썼던 것 같은데 도대체 그땐 어떻게 썼는지 신기할 만큼 독후감은 쓰기 쉽지 않았다. 하물며 첫 책은 5줄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도 책을 읽고 쓰기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다 보니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신기할 만큼 글은 쓰면 쓸수록 생각도 확장되고 글의 수준도 나아지는 것 같다. 그 재미에 몇 달 동안은 독후감 쓰기에 푹 빠져 지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찝찝하다. 


 그렇게 독후감을 쓰는 게 익숙해질 때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이라고 딱히 거창한 수준의 것은 아니고 그저 스스로 Originality를 가진 무언가를 창조해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습작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로 플롯을 짜고 써보는 훈련을 했다. 그 결과물은 당연히 재미도 없고 수준 미달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빠져든 것은 스스로 이룬 것이 없는 데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고달픈 현실에서 잠시라도 피할 수 있는 탈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진작에 졸업했지만 자격증도, 경험도, 재산 조차 하나 없는 29살 병장은 그 존재 만으로도 불안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잠시 현실을 잊고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그때는 정말 글을 쓰는 그 자체에 매료되었고 집중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글쓰기가 재미있었다.  


 한 동안 습작을 이어나가던 중 병영문학상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무려 중편소설로. 당연히 입상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글쓰기를 통해 도전해보고 뭔가 결과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20대 내내 실패로만 점철된 시간들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그게 뭐가 됐든 ‘성취’가 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사소하더라도 성공의 경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두 달간을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결과는 장려상이었다.(참가상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실망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때 상황에서는 대입 이후 근 10년간 무언가에 도전을 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쉬움보다는 기쁨이 컸다. 사실 기쁨이라고 하기도 미안할 만큼 뿌듯함이 가득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자신감이 고양되기 시작했다.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던 전역 후 먹고 살 걱정, 미래의 불안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흐려졌다. 고작 그 상을 탄 이후부터는 그냥 뭐든 어떻게든 잘 될 것만 같았다. 치열한 고민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고민하면 뭐 하나 뭐라도 하면 되겠지 하는 나사 빠진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이런 모습에 일부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심 기쁜 게 더 컸다. 20대 때 산산조각으로 박살난 자존감이 조금씩 아물어가는 것 같았다. 좀 더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글쓰기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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