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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Jan 12. 2024

1. 조직 관리에 첫 발을 들이다. (1)

첫 번째 인사평가

 연 말에 팀장 발령을 받는 것의 가장 큰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

 수남 씨는 팀장이 된 지 불과 한 달 남짓이 지난 시점에 문득 전해져 온 이메일을 통해 이 질문의 답을 알 수 있었다. 메일은 공지사항을 전파하는 내용이었고, 그 공지사항에 담긴 소식은 바로...... '인사평가'의 시즌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에게 인사평가란 무엇인가?

 직장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승진과 인상 연봉의 기준이며, 팀원의 한 해를 보상을 받아야 하는 직장생활의 정수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어쩌면 팀장의 존재 의의는 인사평가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평가는 무척이나 신중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기에 회사의 인사제도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직원들 역시 본인들이 공정하고 명확하게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반발은 팀장이나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직원들은 자신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오류를 범하긴 하지만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중차대한 인사평가를 아직 팀장이란 자리와 역할에 적응도 마치지 못한 햇병아리가 수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인사평가 기간 내 수남 씨의 머릿속엔 평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가끔은 꿈에서조차 인사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과거 대리 시절 당시 팀장이 인사평가를 위한 서류 작업을 옆에서 도운 적이 있었다. 그 어렴풋한 경험을 떠올려 자료를 작성할 수는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최종적으로 상대 평가를 통해 우수한 팀원과 그렇지 않은 팀원을 나눠야 하는 것은 그저 난감하기만 할 뿐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인사팀은 제출 시한을 뭘 그리도 타이트하게 주는 것인지, 팀원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고작 며칠의 말미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경험이 많은 팀장들이야 가능할지 몰라도 수남 씨 같은 신임 팀장을 배려하지 않는 인사팀을 향해 욕지거리가 나올 판이었다.

 


 

 수남 씨를 첫 번째로 힘들게 한 것은 바로 '평가 기준'이었다. 판매실적처럼 정량적인 목표야 실적에 따라 평가를 하면 명확하겠지만, 수남 씨가 몸담고 있는 기획부서는 실적을 수치화하기 어려운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평가 기준을 세우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팀원들의 업무목표와 관련된 성과 자료를 펼쳐놓고 평가항목을 하나하나 비교해 봐도 대부분 억지로 정량적인 기준을 만들거나, 대놓고 정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되어 있다 보니 결국 수남 씨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개월 전 팀원이었을 때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제출하여 작성한 합의서이건만, 막상 평가를 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다. 문득 수남 씨는 과거의 자신이 당시 팀장과 업무목표에 대한 합의를 할 때 참으로 무성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토록 무성의했다는 것은 과거의 수남 씨는 한 해에 어떻게 일하고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였기에, 그동안 너무 수동적으로 일을 한 것만 같아 괜히 뒷 맛이 썼다.


 이에 수남 씨는 주변에 조언을 구해봤지만 그들 역시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팀원이니 그 경험을 잘 떠 올려 보라'는 정도뿐이었다. 솔직히 수남 씨 입장에선 오히려 같이 팀원으로써 근무할 때의 경험과 관점으로 평가하기가 더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그동안 동고동락한 정이 있는 데 어떻게 나쁜 평가를 줄 수 있겠는가? 그동안의 관계를 고려하면 평가가 후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변별력 없는 평가 밖에 못하는 무능한 팀장임을 자인하고 널리 광고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하필이면 올해 수남 씨 팀원 중에 진급 심사 대상자가 한 명이 있다 보니, 더더욱 평가 근거를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준비를 해야만 했기에 고민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인사팀조차 평가 기준에 대한 질의에 대해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으니 지금의 수남 씨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말은 '팀장님이 객관적으로 잘 평가하셔야 한다.', '앞으로 팀을 어떻게 운영할지 잘 고민해 보시고 판단하셔라.'라는 교과서적인 대답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처럼 평가 기준이 모호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것은 바로 팀장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서 누구는 좀 유연하게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엄격하게 하기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스레 엄격하게 평가했다간 수남 씨의 팀원들은 앉은자리에서 뒤통수를 맞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되고, 반대로 한 없이 유연하게 평가했다간 주변에서 손가락질받고 평가의 신뢰도를 심연 깊은 곳으로 수장시킬 판이다. 하다못해 다년간의 평가 경험이라도 있다면 대략 이 정도면 적당하다는 감이라도 있을 텐데, 그런 감도 없는 우리의 수남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 갈팡질팡 헤맬 뿐이었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남 씨 나름대로 어찌어찌 평가 기준을 세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막상 팀원의 평가 결과를 최종적으로 평가지에 기재하려는 순간, 수남 씨는 '불확신'이라는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도대체 일을 잘한다는 것이 뭐란 말인가? 터놓고 말해서 팀원들이 가지고 오는 결과물들이 특출 나면 뭘 얼마나 특출 나냔 말이다. 대부분 지시 범위 내에서 고만고만하거나 루틴 한 업무들이 대부분이고, 오히려 수남 씨가 직접 하는 것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경우도 많았다. 차라리 일의 결과물이 누가 봐도 '우와~~' 할 정도면 시원하게 A를 줄 수 있을 것인데..

 일의 결과물이 어차피 고만고만하다면, 담당하고 처리하는 일의 양이 많~~~으면 일을 잘하는 것인가? 중요도가 높은 업무의 담당자가 더 일을 잘하는 것인가? 회사에 재무적으로 기여를 해야만 하는가? 개인적으로 일은 잘하지만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는 팀원은 어떤가? 그 반대라면? 숙달된 10년 경력자와 성장하는 1년 차는 누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평가란 결국 연봉 인상 그리고 진급과 직결된 문제다. 그렇다면 어떤 직원이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어떤 직원이 진급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팀원 모두를 똑~같이 공평~하게 B+을 주자니 이건 수남 씨 스스로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잘한다고 여겨지는 직원들에게 A를 주자니 그것 역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직원은 정말 A를 받을 만큼 일을 잘하는 것인가? 도대체 어느 정도 잘해야 A인 것일까? 엄~~~ 청? 엄~~ 청?, 엄~청? 아니면 조금 더? 기획, 지원 업무의 특성상 명확한 성과와 실적을 보여주기 어렵다 보니 '이 직원은 A야!!'라는 평가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물며 '이 직원은 B나 C야!!'라는 말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솔직히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정이 가고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이 있는 반면 좀 모자라 보이거나 같이 일하기 싫은 직원들 역시 보이기 마련이다. 수남 씨 역시 평가를 하는 내내 평소에 '이건 뭐지?, '얘는 안 되겠는데?' 싶은 생각을 했던 직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막상 B라는 평가를 주려고 하니 의구심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수남 씨의 주저함을 잡아끌었다.

 물론 수남 씨도 과거엔 그런 부족해 보이는 직원들과 본인이 똑같은 평가 결과인 B+를 받았음을 알게 된 후 화가 나서 꽤나 오랫동안 속을 삭였던 기억이 있었다. 또한 수남 씨 역시 이전에는 일 잘하는 직원에 대해 좋은 평가를 주고, 일 못하는 직원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못한 회사와 상사를 볼 때면 그 들이 무능하고 부당해 보였고, 나중에 팀장이 된다면 본인은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팀장이 되고 나니 남들보다 높거나 낮은 평가를 한 후 이를 해당 팀원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팀원은 고사하 수남 씨 본인 스스로 납득할만한 평가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물정 몰랐던 것은 그 무능하게 보였던 팀장들이 아니라 수남 씨였던 셈이다. 그 당시 평가의 공정성을 외치던 수남 씨가 팀장들의 눈엔 어떻게 비쳤을지 모니터를 쳐다보던 수남 씨의 얼굴이 괜스레 붉어졌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가는 팀장 혼자서 오롯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며,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수남 씨는 팀장 발령 후 처음으로 팀장이 된 것을 후회했다. 팀장이 되었다고 월급은 쥐꼬리만큼만 올랐는데 반해, 맡은 일은 더 많아지고 책임은 더 늘어난 데다 하물며 시리도록 외롭기까지 했다.

 

 결국 수남 씨는 텅 빈 사무실에서 평가표의 S와 C라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광대가 되어 늦은 시간까지 외로운 싸움을 이어 나갔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사무실 저편 군데군데 남아 있는 다른 팀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로운 분투를 이어 나가는 그 들을 보며 수남 씨는 잠시 동질감을 느끼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 치열한 외줄 타기를 끝맺어야만 할 시간이 다가왔다. 상념에 잠겨 모니터를 쳐다보던 수남 씨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정리했다. 이 모든 불확실과 혼돈 속에서도 수남 씨는 오늘까지 등수를 세워야 했고,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잔인한 순간은 결국 찾아왔다.

 수남 씨는 고민의 끝에서 나온 결정인지 그게 아니면 무의식에서 툭 튀어나온 진심인지도 알 수 없는 평가 점수를 기재한 채 평가표를 닫았다. 보통은 치열한 고민 끝에 어떤 일을 마치면 시원섭섭하고 후련하기 마련이건만, 인사평가는 그런 배려마저 없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하는 수남 씨의 뒤로 찝찝함이 길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수남 씨는 이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아직 인사평가는 끝나지 않았음을....

어쩌면 가장 어려운 단계가 남아 있다는 것을 초보 팀장 수남 씨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지금의 이 치열한 고민과 결정이 어떤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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